장보고는 왜 남해안의 해신이 못되었을까?

장보고는 왜 남해안의 해신이 못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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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죽은 민중의 영웅이라면 대개 민중의 신으로 좌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상하게도 장보고만은 민중의 신이 되지 못했다.당의 영성을 믿고 그 영성에 의탁하여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 다산을 희구하는 사라들은 장보고를 주신으로 받들지 않았다.

공간

완도

해남의 남쪽에 있고, 주위에 고금도·신지도·사후도 등이 있다. 고향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에 장보고가 완도읍 장좌리 장도를 중심으로 청해진을 설치하여 운영한 곳으로 유명하다.

인물

장보고

장보고(張保皐, ?~846) : 신라의 무장. 해적들의 인신매매를 근절시키려고 해로의 요충지 청해에 진을 설치하고 청해진 대사로 해적을 완전 소탕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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