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해녀들도 진상부역을 담당했다는데?

조선시대에는 해녀들도 진상부역을 담당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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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해녀
『삼국사기(三國史記)』권 19 고구려 본기, 문자왕 12년(서력 503년), 여름 4월조에 진상품으로 ‘珂則涉羅所産’의 기사가 나온다. 여기서 가(珂)는 제주의 진주 혹은 패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곧 진주를 채취한다는 것은 바로 단시간에 물에 잠수하여, 전복과 같은 해산물을 채취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조선조 숙종 5년(1679년) 정의현감 김성구(金聲久)가 기록한 『남천록(南遷錄)』에는 포작인의 수가 대단히 많아서 족히 진상역에 응할 수 있었고, 경신년(1680)이후로 포작인은 사라지고 해녀들이 이 일을 담당했던 기록으로 보면, 해녀들도 진상부역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공간

제주도

한국 최남단에 위치한 도이며, 8개의 유인도와 55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러시아, 중국 등 대륙과 일본, 동남아 등지를 연결하는 요충지이며, 세계적인 휴양관광지이다. 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예로부터 해양민속, 해양기술,

인물

김성구

김성구(1641-1707) : 조선 후기의 문신, 현종 때 여러 관직을 거쳐 숙종 19년에 강원도 관찰사를 됨. 호는 팔오헌이고 저서로는 <팔오헌문집>이 있음.

소품

진주

진주: 진주조개·대합·전복 따위의 조가비나 살 속에 생기는 딱딱한 덩어리. 탄산칼슘이 주성분이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광택이 나서 장신구로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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