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과 김춘추

김유신과 김춘추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현자(賢者)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타
• 출처 : 편집부 ()
• 내용 :
역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웅이란 결코 한 인물의 뛰어남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가 원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 텐데요. 신라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뤄낸 김유신과 김춘추의 묘를 둘러보며 두 인물은 혼란스러웠던 한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해봅니다.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 명장 김유신의 무덤. 지름이 30미터에 달하며 둘레돌에 12지 신상을 조각해 왕릉에 버금가는 규모로 무덤을 장식했는데요.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죽자 문무왕이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고 그의 공덕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어릴 적부터 삼국통일의 꿈을 품고 수련과 기도에 몰두했던 김유신 장군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요. 김유신이 사랑하는 천관 여를 잊기 위해 자신이 아끼던 말목을 쳤다는 이야기는 아마 다들 알고 있겠지요 그와 더불어 김유신 장군의 젊은 시절, 아름다운 여인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구려 첩자 백석이 김유신을 죽이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나던 중에 아름다운 세 여인이 나타나 위험에 처했음을 알려 목숨을 구하는데요. 이 여인들이 바로 변신한 호국신들 이었습니다. 그 뒤 김유신은 나가는 전투마다 승리를 거둬 이때부터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김유신은 가야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약점을 극복하고 최고의 지위까지 올라 많은 민중들의 사랑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설화적인 이야기가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또 한 명의 인물 김춘추, 나라 잃은 왕손 김유신과 쫓겨난 왕손 김춘추의 만남이야말로 참으로 운명적이었습니다. 누이동생 문희가 김춘추의 옷을 꿰매준 것이 인연이 되어, 김유신과 김춘추는 처남 매부사이가 되는데요.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삼국통일이라는 큰 뜻을 이루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훗날 김춘추는 태종무열왕에 즉위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이후 뒤를 이은 문무왕은 고구려를 멸망시키며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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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