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왕과 죽엽군

미추왕과 죽엽군

분류 문학 > 이상적인물형 > 군은(君恩)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
• 신분 : 왕족
• 지역 : 영남
• 출처 : 편집부 ()
• 내용 :
김알지의 7대손 미추왕은 신라의 제 13대왕으로 미추이질금이라고도 한다. 그는 대대로 벼슬이 높고 덕이 있어 김씨로써는 처음 왕위에 올랐다. 그는 신라의 호국신으로서 그에 관한 두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는데, 첫 번째 설화는 이렇다. 제14대 유리왕대에 이서국사람들이 금성을 공격해왔다. 신라는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막았으나 전세는 점점 불리해져갔다. 그때 갑자기 귀에 댓잎을 꽂은 군대가 나타나서 신라군대와 힘을 합쳐 적을 무찔렀다. 군대가 물러간 뒤 댓잎을 꽂은 군사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미추왕의 능 앞에 댓잎이 수북히 쌓여있는 것을 보고는 그제서야 미추왕의 혼령이 도운 것임을 알게되었다. 이때부터 미추왕릉을 가리켜 댓잎 꽂은 병사가 나타났다하여 죽현릉(竹現陵)이라 불렀다. 그 후 37대 혜공왕때인 기미년(779) 4월 , 김유신 장군의 무덤에서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일더니 무덤 속에서 어떤 사람이 장군 차림에 말을 타고 갑옷과 병기로 무장한 4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미추왕이 잠들어 있는 죽현릉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능 안에서 무언가가 진동하고 소리 내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어떤 때는 호소하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저는 평생을 나라를 구하는데 힘을 다하여 통일을 이룩한 공이 있고, 이제는 혼백이 되어서도 나라를 수호하며 재앙을 물리치고, 환난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경술년(혜공왕 6년)에 제 자손이 죄 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군주나 신하가 저의 공을 염두해 두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나서 다시는 나라를 위해 힘쓰지 않겠으니, 왕께서 허락해주소서.” 하소연 하는 이는 김유신 장군의 혼백이었다. 미추왕은 김유신의 호소에 “나와 공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 백성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대는 다시 이전처럼 힘써주시오.” 김유신 장군이 세 번을 청하였으나 미추왕은 끝내 허락지 않으니 회오리바람이 일며 김유신 장군은 다시 무덤으로 되돌아갔다. 이 이야기를 들은 혜공왕은 두려운 마음에 즉시 대신 김경신을 보내 김유신 장군의 무덤에 가서 사과하게 하고, 장군과 연고가 있는 취선사에 공덕보전 30결을 주어 장군의 명복을 빌었다.

미추왕이 아니었다면 김유신의 노여움을 막지 못했을 터이니, 나라를 지키는 미추왕의 호국이야말로 크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라 사람들은 그 덕을 기려 오릉(박혁거세왕을 비롯한 왕능 5개)보다 위에 두어 대묘(大廟라)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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