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 2

박제상 2

분류 문학 > 이상적인물형 > 군은(君恩)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
• 신분 : 관료
• 지역 : 영남
• 출처 : 삼국유사 ()
• 내용 :
신라의 17대 내물왕이 즉위한지 36년 경인년(390년)에 왜왕이 화친을 제의하며 사신을 보냈다. 사신은 화친의 뜻으로 왕자 한명을 보내 달라 청했다. 고민 끝에 왕은 셋째 아들 미해를 왜국으로 보냈다. 미해 왕자의 그 때 나이가 열 살이라 박사람을 부사로 딸려 보냈는데, 왜왕은 미해를 붙잡아 두고 30년이 지나도록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내물왕에 이어 눌지왕이 즉위한지 3년째 되던 기미년(419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사신을 보내왔다.“ 저희 임금께서 대왕의 아우 보해가 지혜가 뛰어나고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서로 친하게 지내기를 원하시니 일부러 소신을 보내 간청하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서로 화친을 맺어 왕래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의 동생 보해에게 고구려로 가도록 명하고 김무알을 보좌로 삼아 함께 보냈다. 하지만 고구려 장수왕도 보해왕자를 억류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을축년(425)에 이르러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열어 술을 마시다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과거 선친께서는 백성들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왜국으로 보냈지만 끝내 다시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소. 그리고 나 또한 이웃나라 고구려가 화친을 맺자하여 다른 아우를 고구려에 보냈지만 여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시도 아우들을 잊을 수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이에 신하들은 삽라군 태수 박제상을 추천하였고, 박제상은 왕명을 받들어 곧장 변복을 하고 고구려로 달려갔다. 그리고 보해를 만나 함께 탈출계획을 세웠다. 보해는 기일이 다가오자 병을 핑계로 대고는 밤중에 도망쳐 고성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고구려왕이 이를 알고 군사를 보내 뒤 쫓았지만 보해가 고구려에 머무는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었기에 군사들이 그냥 보해와 박제상을 보내주었다. 왕은 보해를 만나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만, 일본으로 간 미해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박제상은 이를 알고, 다시 왜국으로 가서 거짓으로 고했다.“계림의 왕이 무고한 아버지와 형을 죽였기 때문에 이곳까지 도망 왔습니다.” 왜왕은 이를 믿고 박제상을 거둬주었다. 그리하여 제상은 미해를 모시고 다니며 바닷가에서 물고기와 새를 잡아 왜왕에게 바쳤다. 왜왕은 기뻐하며 제상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미해에게 도망가라하며 자신은 남아서 왜인들을 막겠다고 했다. 날이 밝자 왜왕은 미해가 도망친 사실을 알고 박제상을 잡아들였다. 박제상은 당당히 말했다. “나는 계림의 신하이지 왜국의 신하가 아니다. 우리 임금의 소원을 이뤄드리려 온 것 뿐이다.” 이에 왜왕은 노하여 “네가 계림의 신하라 하니 오형에 처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왜국의 신하라 하면 후한 녹을 주고 살려줄 것이다.” 이에 제상은 갖은 형벌을 다 받으면서도 끝까지 왜국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죽음을 택했다.

한편, 신라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박제상을 기리며 잔치를 베풀고 대대적인 사면령을 내렸으며 제상의 아내를 국대부인으로 봉하고, 제상의 딸을 돌아온 미해의 부인으로 삼게 했다. 제상의 부인은 처음 제상이 고구려로 떠날 때 남편을 뒤 쫓아가다 망덕사 문 남쪽의 모래밭에 주저앉아 오래도록 울부짖었는데, 이 때문에 이곳을 장사(長沙)라 불렀다. 오랜 뒤에 부인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그만 삶을 마감했고,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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