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들루프의 역사

과들루프의 역사

가. 식민 시대 이전

과들루프는 다른 카리브 섬들과 마찬가지로 4000~5000년 전, 토기 시대 이전에 처음으로 베네수엘라에서 트리니다드를 거쳐 이주해 온 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뒤를 이어 남아메리카의 오리노코(Orinoco) 강 유역에서 이주해 온 아라와크 족(Arawak)이 거주하면서 담배와 고구마 등을 재배하였으며, 콜럼버스의 발견 당시에는 카리브 인디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카리브 인디언들은 섬을 ‘아름다운 물의 섬’ 이라는 뜻의 ‘Karukera’로 불렀다.

유럽 인 중에서 섬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콜럼버스로, 1493년 자신의 2차 항해 중에 과들루프를 발견하였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발견 당시 잠깐 동안만 상륙했었기 때문에, 과들루프가 하나의 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접한 두 개의 섬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나. 식민 시대

과들루프에는 신대륙에 진출한 목적의 하나인 금이 매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에도 유럽 인들의 주목을 그다지 받지 못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을 왕래하는 선박들이 물과 식량을 공급받는 경유지로만 이용하였다.

콜럼버스의 상륙 이후 처음으로 과들루프에 진출하여 정착한 것은 프랑스 인들로, 1635년에 샤를 리에나르(Charles Liènard de l'Olive)와 장 뒤플레시스(Jean DuPlessis d'Ossonville)가 현재의 바스테르 지역을 점유하고 정착지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이질적인 기후와 준비 부족으로 인해 초기 정착지 건설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장 뒤플레시스는 황열병과 기아로 죽음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남은 샤를 리에나르는 원주민인 카리브 인디언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야 했으며, 계속된 전투는 1660년에야 완전히 끝이 났다. 초기 정착자들은 담배와 인디고, 커피 등 여러 농작물을 시험적으로 재배하다가 브라질에서 쫓겨난 네덜란드 인들의 추천으로 사탕수수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게 되었다. 1642년에는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유럽 대륙에서 7년 전쟁(1756~1763년)이 벌어지는 동안에 영국은 1759년에 과들루프를 점유하고 푸앵트아피트르에 항구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1763년 파리 조약(Treaty of Paris)에 따라 과들루프는 인근의 마르티니크(Martinique)와 함께 프랑스에 반환되었으며, 1775년에 프랑스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1789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 기간은 과들루프의 역사에서도 가장 혼란한 시기였다. 영국은 1794년에 다시 섬을 점유하고 과들루프 내의 프랑스 왕정주의자들과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기의 국민공회는 빅토르 위그(Victor Hugues)를 파견하여 섬을 되찾도록 하였다. 흑인 민족주의 옹호자였던 위그는 영국으로부터 섬을 되찾고 나서 과들루프의 노예를 해방시키는 조치를 실시하였다. 또한 영국군이 철수한 이후에는 플랜테이션 농장의 소유주이자 영국에 동조한 세력이었던 300명의 왕정주의자를 처단하는데, 이것을 시작으로 1,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죽임을 당하는 공포 정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위그가 미국 선박을 공격해 미국이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하자, 여기에 불안을 느낀 나폴레옹 1세(Napoléon Ⅰ)가 1802년 과들루프에 앙투안 리슈팡스(Antoine Richepance)를 총독으로 파견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노예제를 복원하게 된다. 노예제 복원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되어 1848년에는 다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노예 해방은 1848년에야 다시 이루어질 수 있었다. 1853년에는 흑인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생프랑수아(Saint-François)에 처음으로 인도인 노동자들이 이주하였다.

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1946년에 프랑스가 식민지법을 폐지하면서, 과들루프는 소앤틸리스 제도의 생마르탱(St. Martin)과 생바르텔르미(Saint-Barthélemy)를 포함하여 프랑스의 지방 행정 구역인 주(département)가 되었으며, 1983년에는 지방(région)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분리 독립을 추진하였지만, 섬을 수차례나 찾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설득에 따라 프랑스의 영토로 계속 남게 되었다. 2007년에는 주민 투표를 거쳐 생마르탱과 생바르텔르미가 과들루프에서 분리되어 별도의 프랑스 해외 자치 지역(collectivité d'outre-mer, COM)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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