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트외스타티위스의 역사

신트외스타티위스의 역사

가. 고대부터 식민 시대까지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제2차 항해에서 처음으로 신트외스타티위스를 발견하였는데, 당시 섬은 원주민이 거주하지 않는 무인도 상태였다. 1625년 프랑스와 영국이 처음 식민지로 편입시켰으며, 1636년 네덜란드가 에스파냐와의 80년간에 걸친 독립 전쟁 끝에 섬을 손에 넣고 최초의 정착지를 건설하였다. 이후에도 신트외스타티위스 섬은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 사이에서 22번이나 점유국이 바뀌었으며, 1816년에야 네덜란드의 소유로 확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1756년 네덜란드가 섬 전체를 면세 지역으로 만들면서 섬은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천연 심해항의 부재와 부족한 식수에도 불구하고 18세기 후반 유럽과 아프리카, 신세계를 잇는 카리브 해의 무역 거점이 되었으며, 노예 무역선을 포함한 수천 척의 선박이 항구를 드나들었다. 신트외스타티위스 역사에서 가장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이 당시에는 최대 2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기도 하였다.

신트외스타티위스는 미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번째 해외 지역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로 남아 있다. 1776년 11월 16일 미국 해군 소속인 앤드루 도리아(Andrew Doria)호가 오라녜스타트의 항구로 들어오면서 미국의 독립을 상징하는 13발의 예포를 발사하였다. 이에 신트외스타티위스는 당시 총독이었던 요하너스 더 흐라프(Johannes de Graaff)의 명령에 따라 오라녜 요새(Fort Oranje)에서 11발의 예포로 응답하면서 해외 지역 가운데 최초로 미국의 독립과 미국 국기에 대해 경의를 표하였다. 여기에 대한 화답으로 미국은 독립 전쟁 기간 동안 미국에 공급되는 탄약과 화약의 운송을 신트외스타티위스가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날의 사건은 미국 역사가인 바브라 터크먼(Barbara Tuchman)이 1988년 발표한 『The First Salute』를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신트외스타티위스에서는 이날을 ‘스타티아 아메리카 데이(Statia-America Day)’라고 부르며 국경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미국과 신트외스타티위스 간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영국은 1781년 섬을 포위하고 보복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무역항으로서 번성하던 섬의 경제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신트외스타티위스가 쇠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795년 당시 섬을 점유하고 있던 프랑스가 교역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면서 신트외스타티위스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상인들이 주변의 섬으로 이주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으며, 이후로는 활력을 잃고 조용한 섬으로 남게 되었다.

나. 근대부터 현대까지

신트외스타티위스는 1828년에 사바(Saba)와 함께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정식 편입되었으며, 1954년부터는 아루바(Aruba), 보나이러(Bonaire), 퀴라소(Curaçao), 신트마르턴(Sint Maarten), 사바와 함께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전 분야에서 완전한 자치권을 가진 네덜란드령 앤틸리스(Netherlands Antilles)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령 앤틸리스의 존속과 관련해 2006년 실시한 주민 투표에서 독립적인 자치 국가가 된 퀴라소, 신트마르턴과 달리, 신트외스타티위스는 보나이러, 사바와 함께 네덜란드의 직접 통치를 받는 것을 선택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2010년 네덜란드 왕국의 특별자치지역(bijzondere gemeenten)이 되었으며, 2011년에는 공식 화폐를 미국 달러(USD, $)로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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