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경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경제

가. 경제와 산업 구조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와의 긴밀한 경제적 관계로 인해 1959년부터 공식 화폐로 미국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2008년 기준 국내 총생산(GDP)은 10억 9500만 달러이며, 카리브 해 일대에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2012년 기준 수출액은 2600만 달러로, 주요 수출품은 럼(Rum), 과일, 어류 등이며 주로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로 수출한다. 수입액은 3억 1000만 달러로, 미국과 푸에르토리코, 영국 등지에서 식품, 건설자재, 자동차, 기계류 등을 수입한다.

1970년대 관광업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가축 사육과 바나나, 사탕수수, 코코넛 재배 등의 농업이 산업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소규모 자영농 중심의 농업 구조였으며, 상당수의 농민들은 어업을 겸하고 있었다. 생산된 일부 과일과 채소를 수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내수용으로 활용되었다.

19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관광업과 역외 금융 서비스를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여 현재는 카리브 지역에서 가장 안정적이며, 번성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관광업은 국민 소득의 50%를 차지하며 고용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부문으로, 2008년에는 9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버진아일랜드를 방문하였다. 관광객 유치는 미국을 비롯한 북아메리카 관광객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1980년대 중엽부터는 역외 금융기관의 설립을 허용하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역외 자회사를 설립할 때 납부하는 법인 설립비가 국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 조세 피난처와 합법적 자금 세탁

2013년 5월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 협회(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ICIJ)와 국내의 인터넷 언론이 공동으로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발표하였다. 여기에 상당수 기업인과 전직 대통령 가족 등 다양한 인사들이 포함된 것이 알려지면서 조세 피난처를 이용한 탈세와 비자금 조성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이 발표에서 조세 피난처로 이용된 지역이 바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였다.

조세 피난처(tax haven)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게 정의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소득세 또는 법인세가 전혀 없거나 있더라도 세율이 매우 낮게 적용되는 지역을 말한다. 보통의 세금 제도는 기업이 국외에서 자회사 등 현지 법인의 형태로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서 모회사의 소재국에서는 과세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들은 소득세가 없거나 세율이 낮은 국가에 페이퍼 컴퍼니 형태의 자회사를 설립하여 소득을 그 자회사에 유보함으로써 조세를 회피할 수 있게 된다. 버진아일랜드는 낮은 세율의 법인세를 부과하지만 자금의 투자처가 버진아일랜드가 아닐 경우 과세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조세 피난처는 이러한 세제상의 혜택 이외에 금융 거래의 비밀주의와 자유로운 기업법으로 인해 회사의 설립과 운영이 비교적 쉽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익명으로 계좌를 개설하거나 다른 사람의 명의로 회사를 등록할 수 있으며, 회사법상 결산 보고, 회계 장부 보관, 주주 총회 개최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금 회피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자금을 합법적으로 세탁하는 창구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버진아일랜드 역시 1994년 말 형사 범죄의 조사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거래 고객의 비밀을 보장하는 ‘포괄 보험법’을 제정하면서 조세 피난처와 합법적인 자금 세탁 창구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2000년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역외 등록된 해외 법인 수는 40만 개를 넘어섰는데, 종합 회계 기업인 KPMG의 조사에 따르면 이는 전 세계 역외 자회사의 40% 이상에 해당된다. 이로 인해 버진아일랜드 내에는 3만여 명에 불과한 인구에 비해 회계사, 변호사, 투자 중개인들이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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