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령 버진아일랜드의 역사

가. 식민 시대 이전

버진아일랜드에 가장 먼저 거주했던 것은 시보니 족(Ciboney)이었다. 그 뒤를 이어 기원후 100년경 남아메리카의 오리노코 강 유역에서 이주해 온 아라와크 족(Arawak)이 세인트존과 세인트크루아에 정착하였다. 콜럼버스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호전적인 성향의 카리브 인디언들이 거주하였다. 1493년 콜럼버스는 자신의 2차 항해에서 세인트크루아를 발견한 후, 섬의 이름을 산타크루스(Santa Cruz)라고 명명하고 에스파냐의 영토로 선언하였다. 이때 일어난 카리브 인디언과 콜럼버스 일행의 전투는 신세계에서 일어난 원주민과 유럽인 간의 첫 번째 충돌이었다. 이후 콜럼버스는 북쪽으로 계속 항해하여 세인트토머스와 세인트존을 발견하였다.

나. 식민 시대–노예 무역의 거점

콜럼버스 이후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처음으로 진출한 것은 에스파냐로, 1555년에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영토임을 선언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원주민인 카리브 인디언들은 전멸하였다. 하지만 1600년대 초 영국인과 프랑스 인들이 에스파냐 인보다 먼저 정착하여 세인트크루아에서 농업을 시작하였고, 1650년 에스파냐에 의해 쫓겨날 때까지 계속 거주하였다. 1653년에 세인트크루아는 몰타기사단(Knights of Malta)에 양도되었지만, 프랑스 서인도회사가 다시 섬을 사들였다. 1666년 영국은 현재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토르톨라 섬에 있던 네덜란드 해적들을 내쫓은 후 자신들의 식민지로 편입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기원이다. 같은 해에 덴마크는 세인트토머스를 자신의 영토로 선언하였으며, 1684년에는 세인트존을 추가하였다. 하지만 세인트존은 영국과의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다가 171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덴마크의 관할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덴마크 인들은 세인트토머스와 세인트존에 수많은 농장을 만들었으며, 1673년부터는 농장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데려왔다. 세인트크루아는 1733년 덴마크 서인도회사의 소유가 되었으며 넓은 해안 평야를 중심으로 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1685년 덴마크는 네덜란드와 브란덴부르크 조약(Treaty of Brandenburg)을 맺으면서 세인트토머스에 노예 무역 기지를 만들었다. 이곳을 통해 아프리카 서부 해안 지역에서 끌려온 20만 명 이상의 노예들이 카리브 일대의 사탕수수와 면화, 인디고 농장의 노동력으로 팔려나갔다. 이후 세인트존과 세인트크루아는 계속 플랜테이션 경제를 유지하였지만, 세인트토머스는 아프리카의 노예와 유럽의 상품, 카리브의 설탕과 럼을 연결하는 삼각 무역을 통해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덴마크는 노예들이 여러 차례 폭동을 일으키자, 1792년에 노예 무역 중단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노예들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은 이보다 50여 년이 지난 1848년으로, 모지스 고틀리브(Moses Buddhoe Gottlieb)의 주도로 세인트크루아에서 노예들의 항쟁이 일어난 뒤였다.

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기반으로 한 섬의 경제는 1848년 노예 해방과 사탕무의 발견 이후로 점점 쇠퇴하였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는 1666년부터 1917년까지 약 250년간 덴마크령으로 남아 있었는데, 대서양에서 파나마 운하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버진아일랜드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한 미국은 1860년대부터 덴마크와 섬의 구입에 관한 협상을 시작하였다. 협상은 1917년에 타결되어 미국은 2500만 달러에 섬을 사들였고, 해군 기지를 건설하였다. 미국은 영토의 확장보다는 군사적 목적으로 섬을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영토로서의 관리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겼고, 1927년에서야 비로소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정식으로 인정하였다. 1931년까지는 미국 해군이 섬을 관할하다가 이후 내무부로 이관되었다. 1936년 미국 의회에서 버진아일랜드 기본법(Organic Act of the Virgin Islands)이 제정되면서 의회의 설립이 허용되었으며, 세인트토머스-세인트존과 세인트크루아로 분리된 2개의 자치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54년에는 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자치 위원회를 폐지하고 현재와 같은 입법, 사법, 행정이 분리된 중앙 정부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1970년에는 처음으로 지사(知事)를 선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