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세랫의 역사

몬트세랫의 역사

가. 식민 시대 이전

몬트세랫의 역사 기록은 잘 남아 있지 않지만 유럽인의 진출 이전에 남아메리카의 오리노코강 유역에서 이주해 온 아라와크 족과 카리브 인디언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인 중에서 몬트세랫을 처음 발견한 것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주변의 다른 카리브 해 섬들과 마찬가지로 1493년 11월 11일 2차 항해 중에 발견하였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몬트세랫을 발견할 당시,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남겨져 있었다.

나. 식민 시대

몬트세랫에 처음으로 진출한 유럽 세력은 1632년에 세인트키츠 섬에서 건너온 영국과 아일랜드계 가톨릭교 신자들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때부터 식민지 지배권을 놓고 다투었으며1662~1966년, 1792~1993년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다. 초기 정착자들은 다른 카리브 해 섬들과 마찬가지로 몬트세랫을 풍요로운 플랜테이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사탕수수와 라임,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이주시켰다. 하지만 몬트세랫은 바위가 많고 지형의 기복이 심해 좋은 품질의 작물을 생산할 수 없었고,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834년 노예 해방과 설탕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몬트세랫의 경제는 쇠퇴하였고,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19세기 중엽 소농 지주 체계로 전환되었다. 이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라임과 염소 사육 등 자족적인 농업이 발전하였다.

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영국은 리워드 제도에서 확고한 통제력을 확립한 후 식민지 체계를 재편하기 시작하였다. 몬트세랫은 1871년부터 1956년까지 리워드 제도 연방 식민지에 속해 있었으며, 1956년 영국 정부가 리워드 제도 연방을 해체하면서 독립된 식민지가 되었다. 1958년에는 새로 만들어진 서인도 연방에 속하게 되었지만, 1962년 서인도 연방이 해체됨에 따라 총독이 관장하는 왕실 직할 식민지(crown colony)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영국 정부는 몬트세랫의 국방과 외교뿐만 아니라 경찰력과 행정, 예산 문제까지 통제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집권한 인민해방운동(People’s Liberation Movement) 정부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영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로울 것으로 생각한 주민 대다수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하였다.

1989년에는 허리케인 휴고에 의해 초토화된 몬트세랫은 재건을 위해 영국의 원조에 의존하게 되었고, 독립에 대한 움직임은 사라졌다. 1995년 7월 18일부터 시작된 수프리에르힐스 화산의 폭발로 인해 대부분의 토지가 황폐화되었고, 인구의 3분의 2가 해외로 이주하였다. 몬트세랫은 이후로도 화산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화산은 최근까지도 분화를 계속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의 폭발은 2003년 7월에 있었다. 2002년까지는 영국의 속령(Dependent Territory 또는 Dependency)으로 불렸지만, 영국의 의회법이 개정되면서 명칭이 해외 영토(British Overseas Territory)로 변경되었으며 주민들에게는 영국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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