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헤나의 역사

카르타헤나의 역사

가. 식민 시대 이전

기원전 4000년경부터 볼리바르(Bolívar) 주와 수크레(Sucre) 주의 경계에 해당하는 시누(Sinú) 강 삼각주부터 카르타헤나 만에 이르는 지역에는 풍부한 사냥감과 온화한 기후 조건을 바탕으로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는 푸에르토오르미가(Puerto Hormiga) 문명이 형성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푸에르토오르미가 문명 지역과 이웃한 디케 운하(Canal del Dique) 지역에서도 문명이 발달하게 되었다. 에스파냐 세력이 진출하기 이전에는 보고타(Bogota) 고원에 살았던 남아메리카 원주민인 치브차 족(Chibcha)의 언어를 사용하는 타로나 족(Tayrona)이 주로 거주하였다.

나. 유럽인의 발견과 식민지 시대

1533년 에스파냐의 정복자 페드로 데 에레디아(Pedro de Heredia)가 처음으로 카르타헤나에 진출하여 원주민 마을이 있던 지역에 정착지를 건설하였다. 마을 초기에는 군인들을 중심으로 약 200명가량의 주민들이 거주하였고, 16세기에 발견된 유적지에서 금이 함께 발견되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하였으나 도굴이 끝나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흩어졌고, 도시의 인구는 다시 감소하였다.

카리브 해에 맞닿아 있지만 만 내부에 위치해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는다는 지리적 이점 가진 카르타헤나 항으로 인해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San Juan), 쿠바의 아바나(Habana)와 함께 대서양 항로의 주요 항구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후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와 페루 일대의 광산에서 채굴된 금과 은을 유럽으로 운반하는 주요 무역항으로 성장하였으며, 노예 무역의 거점으로도 기능하였다.

도시가 번영을 누리게 되면서 프랑스와 영국의 사나포선(민간 소유이지만 정부로부터 다른 나라의 선박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배)들이 수시로 도시를 습격하였는데, 1586년에는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가 이끄는 함대의 습격으로 인해 도시의 4분의 1가량이 파괴되고, 대성당이 폐쇄되었다. 계속되는 외부 세력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에스파냐는 16~17세기 본격적인 방어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요새와 함께 11㎞에 달하는 성벽, 음식 및 무기 저장고, 요새를 연결하는 지하 터널 등이 만들어지면서 난공불락의 거점으로 변모하였다.

식민 시기 에스파냐 무역선단의 항해 경로

식민 시기 에스파냐 무역선단의 항해 경로 ⓒ 푸른길

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1741년 3월, 카르타헤나 해상에서는 에드워드 버넌(Edward Vernon) 장군이 이끄는 영국 함대와 에스파냐 함대가 충돌하였다. 카르타헤나 전투(Sitio de Cartagena de Indias)로 알려진 이 전투에서 6척에 불과했던 에스파냐 함대는 186척으로 이루어진 영국 함대를 맞아 승리를 거두면서, 에스파냐가 계속해서 카리브 해 일대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에스파냐 군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기적으로 우기가 시작되던 때였다는 점과 황열병으로 인해 영국군이 상당한 병력을 손실한 점 등이 있다.

이후 1750년부터 19세기 초엽에 이르는 기간은 ‘은의 시대(Edad de Plata)’라고 불리는 도시의 성장기였다. 이 시기 동안 도시로 대규모의 인구가 유입되었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주요 건물들의 건축이 이루어지면서 19세기 초 누에바그라나다(Nueva Granada) 부왕령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810년부터 270여 년간 지속된 에스파냐 식민 통치에 맞선 독립 전쟁을 거치면서, 도시는 모든 분야에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도시의 복구는 느리게 진행되었으며,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빈곤이 더욱 확대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세기 중엽에는 기근과 콜레라로 인해 도시 주민의 상당수가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19세기 말부터 도시의 기능은 조금씩 회복되었고,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중국 등 여러 국가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이 각기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 이후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의 전체 인구 증가율을 넘어서는 인구 성장을 지속적으로 기록했으며, 항만 시설의 민영화와 관광 산업의 성장과 함께 인구 증가는 더욱 빨라졌다.

연관목차

483/1205
5. 콜롬비아
6. 볼리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