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차밤바의 역사

코차밤바의 역사

온화한 기후를 띤 안데스 산지의 분지에 입지한 코차밤바에는 고대부터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모여 살았고, 잉카(Inca) 제국의 영토에도 포함되었다. 코차밤바 일대의 원주민들은 주로 케추아 족(Quechua)이었으며, 이들의 언어인 케추아 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남아메리카를 식민화한 에스파냐 인들이 코차밤바에 도시를 건설한 때는 1571년이었다. 에스파냐의 페루 부왕(副王, Virreinato del Peru)이었던 프란시스코 알바레스 데 톨레도(Francisco Álvarez de Toledo)는 오늘날의 코차밤바 지역에 자신의 작위인 오로페사(Oropesa) 백작의 이름을 딴 ‘비야데오로페사(Villa de Oropesa)’라는 도시를 세웠다. 이 도시는 포토시(Potosí) 등 인근 광산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기지를 목적으로 세워졌다.비야데오로페사는 에스파냐 식민 시대 당시 세계 최대의 은광 도시였던 포토시의 번영과 더불어 발전하였다.

1781년 오루로에서 일어난 원주민들의 봉기는 비야데오로페사가 오늘날의 코차밤바로 이름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1786년 에스파냐의 국왕 카를로스 3세(Carlos Ⅲ)는 이 봉기를 진압한 공로를 기리는 동시에, 식민지의 또 다른 봉기를 미리 막으려는 차원에서 도시의 이름을 ‘비야데코차밤바(Villa de Cochabamba)’로 바꾸었다. ‘코차밤바’라는 지명은 케추아 어로 호수라는 뜻의 ‘쿠차(qucha)’와 평원이라는 뜻의 ‘팜파(pampa)’에서 유래하였다.

볼리비아 독립 이후에도 코차밤바는 농업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으며, 20세기 이후에는 정유 공장 등의 산업 시설도 들어섰다. 쾌적하고 온화한 기후 덕분에 휴양지 및 관광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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