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랑키야의 역사

바랑키야의 역사

가. 도시의 건립과 식민 시기

원주민의 정착지였거나 에스파냐 식민 시기에 세워진 콜롬비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바랑키야는 상당히 후대에 건립된 도시이다. 바랑키야에 관한 가장 오래된 역사적 기록은 1533년 에스파냐 역사학자인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오비에도 이 발데스(Gonzalo Fernández de Oviedo y Valdés)가 쓴 페드로 데 에레디아(Pedro de Heredia)의 여행 경로에 대한 기록에서 발견된다.

에스파냐 정복자인 페드로 데 에레디아는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Cartagena)를 건설한 인물이기도 한데, 그에 따르면 바랑키야는 산타마르타(Santa Marta)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카누를 타고 마그달레나 강을 오르내리면서 정박하던 곳이었다. 즉 마그달레나 강은 교역로로 활용되었으며, 강어귀에 있는 바랑키야는 원주민들이 말린 새우를 가져와 소금과 다른 물건들을 교역하는 장소였다는 것이다. 1629년에 인디언의 한 부족이 정착하면서 촌락이 형성되었다.

나. 독립과 근대

19세기 초 에스파냐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콜롬비아의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바랑키야는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1812년 피에레 라바투트(Pierre Labatut) 장군이 이끄는 콜롬비아 독립군은 바랑키야 인근에서 에스파냐 군대를 격파하였고, 당시 카르타헤나의 최고 지도자였던 마누엘 로드리게스 토리세스(Manuel Rodríguez Torices)가 1813년 4월 7일에 바랑키야를 도시로 승격시켰다. 이날은 후일 ‘바랑키야의 날’이라고 불리며 기념일이 되었다.

1815년 바랑키야의 부유한 상인인 호아킨 바예호(Joaquín Vallejo)가 사재를 털어 독립 전쟁을 전개하였으나 에스파냐 군대에 패배하였다. 그러나 1821년 카르타헤나에 남아 있던 에스파냐 군대가 패전하면서 당시 카르타헤나의 관할 구역이던 바랑키야도 독립을 이루었다. 에스파냐 세력은 1823년 마라카이보 호(Lago de Maracaibo)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콜롬비아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되었다.

바랑키야는 1823년에 증기선이 도입되고 2년 뒤에 마그달레나 강을 항해하는 항로가 열리면서 교역의 요충지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바랑키야는 콜롬비아 내륙의 도시와 촌락을 연결하는 교역 도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의 주요 특산물인 커피를 수출하는 관문이 되었다.

1863년 콜롬비아 합중국(Estados Unidos de Colombia)이 설립되고, 상업이 활성화됨에 따라 바랑키야에 건설 붐이 일었다. 1869년~1871년 사이에 상업의 요충지로서 바랑키야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콜롬비아 최초의 철도인 볼리바르 철도(Ferrocarril de Bolívar)가 건설되어 바랑키야와 서남부 내륙의 살가르(salgar)를 연결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수로, 전차, 전화 등 여러 근대적 시설이 들어섰으며, 1893년 도시의 북쪽 교외에 푸에르토콜롬비아 부두(Muelle de Puerto Colombia)의 건설이 완료되었다.

다. 20세기 이후

근대 교통수단의 발달로 내륙 운송이 원활해지고, 카리브 해로 통하는 항구의 건설로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이 강화되자 바랑키야는 20세기 전반 동안 콜롬비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가 되었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노동력의 수급과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여 서남아시아, 유럽, 남부 및 동부 아시아로부터 이주민이 유입되어 성장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또한 다양한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의 유입은 바랑키야를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국제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1905년에는 바랑키야 상공회의소가 건립될 정도로 도시 경제가 성장을 이루었다. 푸에르토콜롬비아 항은 콜롬비아의 최초 항구이자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긴 부두를 가졌었다. 이와 더불어 유대 인뿐만 아니라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프랑스, 독일, 미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의 다양한 나라에서 이주민들이 유입되어 급속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높은 성장세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상수도와 전기가 공급되고 운동 경기장도 건설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사바니야 만(bahía de Sabanilla)에 있는 위성 항구들을 잇는 철로가 완공되었고, 마그달레나 강의 모래톱이 제거되면서 바랑키야는 더욱 성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강을 따라 운송되는 화물의 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였는데, 이는 도로 교통이 발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태평양 연안의 항구 도시인 부에나벤투라(Buenaventura)가 성장함에 따라 무역항으로서 바랑키야의 중요성과 경쟁력은 점차 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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