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알토의 사회

엘알토의 사회

가. 급속히 성장한 라파스의 위성 도시

엘알토는 인구 기준으로 볼 때 볼리비아에서 산타크루스(Santa Cruz)에 이어 2위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도시로 성장한 기간은 50년이 채 되지 않는다. 20세기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악 지대였고, 20세기 초엽만 하더라도 도시라기보다는 인구 수백 명이 거주하는 소규모 취락에 지나지 않았다. 20세기 중엽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1980~1990년대부터는 급격하게 팽창하였다. 엘알토가 이처럼 경이적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라파스의 영향이 컸다. 볼리비아의 행정 수도이자 전통적인 정치, 사회의 중심지인 라파스의 도시 크기가 확대되면서 위성 도시로서 엘알토에 산업 시설과 주거지가 대규모로 들어서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엘알토는 2000년대에는 라파스의 인구를 웃돌게 된 것이다.

라파스와 엘알토는 위치상으로만 인접한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라파스와 엘알토를 ‘라파스-엘알토(La Paz-El Alto)’라는 하나의 도시(권)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 라파스-엘알토는 인구가 170만 명에 이르는 볼리비아 최대의 도시가 된다.

엘알토가 라파스의 위성 도시로서의 성격을 가진 만큼, 엘알토의 교육은 라파스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다. 엘알토 국립대학교(Universidad Pública de El Alto)이 설립되어 있지만 대학 교육은 라파스에서 거의 도맡고 있다. 하지만 초·중등학교는 도시 규모에 걸맞게 계속해서 설립되고 있다.

나. 거주지 분화

라파스의 위성 도시 엘알토의 급속한 성장은 스프롤(sprawl) 현상에 따른 결과로 설명되기도 한다. 스프롤 현상이란 도시의 급격한 팽창으로 시가지가 교외 지역으로 무질서하게 확대되는 것을 말하는데, 계곡에 들어선 라파스의 도시 권역이 고원 정상부까지 확대되면서 산업 시설이나 거주지가 기존의 라파스 시내에서 엘알토로 빠르게 옮겨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스프롤 현상은 거주지 분화라는 문제를 가져온다. 실제로 라파스-엘알토 지역의 경관을 살펴보면, 라파스의 저지대와 중간 지대에는 부유층 거주지와 중심 업무 지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라파스의 고지대와 엘알토에는 서민층의 거주지와 산업 시설이 들어서 있다. 물론, 엘알토는 노동 계층이나 하류층만 거주하는 도시는 아니며, 비교적 저렴한 지대(地代)와 라파스로 통근하기 편리한 교통 여건 때문에 사무직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류 계층도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엘알토는 중산층 이상의 거주지라기보다는 서민층이나 노동자들의 거주지라는 특성이 강하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스프롤 현상이 일어나면서 무질서하게 확장된 도시의 외곽 지역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는 기존에 라파스에 거주하던 서민층이나 하류층이 엘알토로 ‘내몰린’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엘알토의 주거 환경은 라파스에 비해 상하수도나 전기의 보급률이 떨어지는 등 열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서민층이나 하류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라파스보다 뚜렷이 높다. 이는 빈부 격차나 치안 불안 등의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며, 이와 동시에 주민의 정치적 성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 저항의 도시

엘알토는 ‘저항’이라는 장소성을 가진 도시로, 그 근원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마라 원주민 저항 운동의 지도자였던 투팍 카타리는 1780년에 엘알토의 고지대를 근거지로 하여 병력 4만 명을 동원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1781년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가 지휘한 원주민 군대는 라파스를 6개월 동안이나 포위하면서 맹위를 떨쳤으며, 오늘날 지도자 투팍 카타리는 저항의 상징으로, 특히 원주민 및 진보 성향의 인사들에게 추앙받고 있다.

대도시로 성장한 오늘날에도 엘알토는 진보 성향의 사회 운동과 노동 운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엘알토의 노동자와 서민 계층은 대체로 진보적 정치 성향이 강하며, 노동 쟁의나 시위 등 진보 성향의 사회 운동과 노동 운동, 저항 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3년 일어난 ‘검은 10월 사건(‘볼리비아 천연 가스 전쟁’이라고도 함)’을 들 수 있다.

친미 성향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시도하던 로사다(Gonzalo Sánchez de Lozada, 1930~ )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출하는 천연가스 문제로 국민의 저항에 부닥쳤으며, 엘알토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군 병력을 동원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6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결국 로사다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으며, 엘알토가 가지는 저항이라는 장소성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처럼 진보적, 저항적 정치 성향이 강한 엘알토는 남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좌파 성향 정치 지도자로 알려진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1959~ ) 볼리비아 대통령의 대표적인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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