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의 공덕으로 죽었다 살아난 곽서안

부인의 공덕으로 죽었다 살아난 곽서안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신앙설화

• 주제 : 신앙
• 국가 : 중국
• 시대 : 한나라
• 참고문헌 : 지장보살영험설화

한나라 익주자사(益州刺史) 곽서안(廓徐安)은 치우쳐 노자교를 믿고 불법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건우(乾佑) 3년(서기950년) 윤 5월 중순에 우연히 병을 얻어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차도를 보지 못하였다. 서안의 처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환희천(歡喜天)에 기도하며 지장보살 존상을 조성할 원이 성취되면 그때자기도 부처님을 믿겠다고 말하였다. 이럭저럭하는 사이 아내의 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서안은 그만 죽어 버렸다.
서안의 처는 원을 못 이루고 남편이 믿음을 내기 전에 병을 못 고치고 죽었으니 애통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하늘을 쳐다보고 통곡하며 기도하니 이틀이 지나서 서안이 다시 살아났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키더니 칼을 가져오게 하고는 자기 혀를 끊으려 하였다.
권속들이 놀라 황급히 칼을 뺏고 진정시켰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혹 미치지 않았나 의아해 했다.
마침내 서안은 처의 안위를 받고서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의 큰 스승이오. 나를 지옥에서 구해 주었고 명을 이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큰 도가 있는 것을 알려 주었소.」
서안의 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서 칼로 혀를 짜르려 하더니 이번에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의 처가 말하였다.
「당신이 죽어서 듣고 보고 한 일을 말씀하여 보십시오.」
서안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내가 죽을 때는 염라대왕의 사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7~8명이 몰려와서 나를 잡아갔소.
한데 그들은 모두가 사록신(司祿神)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푸른 말을 탔는데 빠르기는 바람과 같았습니다. 나를 데리고 동북방을 향하여 얼마동안 가니 큰 성문이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성안에는 큰 대궐이 있었는데 그 앞에 이르러 사록신들이 말에서 내려서 나를 데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이 바로 염라청이었습니다.
대왕으로 보이는 어른 앞에 나를 끌어다 놓으니 왕은 갑자기 성을 내며 사록신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은 어째서 아직 착한 소원을 마치지 못한 사람을 잡아왔느냐?」
왕은 매우 성을 내어 곁에 있던 쇠지팡이를 가지고 사록신들을 후려쳤습니다.
그런 다음 나에게 말씀하였습니다.
「공이 부인의 덕에 뜻을 합하여 지장대사의 존상을 조성할 원을 발하니 기특하오.
그렇게 되면 많은 중생들이 죄업을 면하게 되겠소. 나도 현재는 염라대왕의 몸을 받고 있으나 실지로 본 원인즉 법에 있습니다. 어떤 중생이라도 지장보살에게 귀의하면 원하는 바가 다 성취될 것이니 공은 급히 인간으로 돌아가서 원을 다 마치시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권을 받게 하십시오.」
하면서 나를 인간으로 돌려보내 주었고, 내가 이제 정신이 들어 생각하니 평소에 성인의 가르침을 믿지 않고 또한 이 입으로 훼방까지 하였으니 그 큰 죄를 어떻게 다 참회하리오. 그래서 혀를 끊고자 한 것입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서안의 처는 그때서야 의심이 풀려서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잘 깨달으셨소. 그러나 혀를 끊는 것으로 참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넘어진 자는 땅을 짚어야 일어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제부터 지장보살을 의지해서 공덕을 닦고, 불법을 훼방하던 그 입으로 당신이 겪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전해주며 삼보를 찬탄하는 것이 참회가 될까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서안은
「당신 말대로 하리라.」
하고 곧 지장보살 등상을 조성하여 그 앞에서 허물을 뉘우치고 염불하여 재일마다 공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며 남녀노소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지장보살을 받들어 모시라고 권하였다.

<지장보살영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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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