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 속의 지장보살

상투 속의 지장보살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신앙설화

• 주제 : 신앙
• 국가 : 중국
• 시대 :
• 참고문헌 : 지장보살영험설화

당나라에 별가(別駕) 벼슬을 한 건갈(健渴)은 신심이 돈독하고 그의 행 또한 매우 청정하였다.
그러면서도 평소 생각하기를 나와 같이 속가 살림을 사는 거사로서 어떤 불보살 명호를 가지고 수행하며 섬겨야 좋을까 하다가 몇몇 스님을 찾아가 물어도 신통한 대답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한 스님 이 말씀하였다.
「내 생각 같아서는 지장보살을 섬기는 것이 좋을 듯싶소. 지장보살은 말세죄고중생을 제도할 것을 부처님에게서 부축 받으셨으니까 말이오.」
하였다.
그 말은 건갈에게 신묘하리만큼 마음속에서 공명이 갔다. 나와 같이 부모님 섬기고 가족을 거느리며 세간 벼슬을 하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특별히 지장보살에게 부축 받은 사람들이로구나. 생각하고,
「지장보살님이 우리를 구하시기로 되었다.」
는 생각이 스스로 들어갔다.
「부처님의 부촉을 받으셨거니 지장보살님이 어찌 나를 저버리시랴 !」
하는 믿음이 들면서 열심히 지장보살 염불을 하며 수행에 힘썼다.
그리고 항상 지장보살을 받들어 모시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단향나무를 구하여 높이가 3치 되는 지장보살 존상을 조성하여 상투머리 속에 정중히 감추어 모셨다.
그러니 다닐 때나 머무를 때나 눕거나 앉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나 항상 지장보살을 모신 것을 생각에서 잊지 않았다.
가히 생각 생각에 지장보살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장종(莊宗) 천성년(天成年 서기 923년)에 병란이 일어났다 건갈은 난군에 포위되어 곧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는 중에 난군에게 참변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건갈은 다만 지장보살만을 일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난군의 한 대장인 듯 한자가 건갈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주춤 하더니 크게 놀란 거동으로 연신 말에 채찍질을 더하며 달아나는 것이었다.
이럭저럭 위기도 벗어나고 병난도 평정되었는데 저때에 난군의 대장이 건갈을 보자 별안간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남은 병사도 정신없이 달아난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하고 다만 기이하다는 소문만이 원근에 퍼져갔다.
또 장흥년(長興 서기 930년)에 건갈은 새로운 관명을 띠고 부임하는 중이었다.
어느 후미진 냇가에 다다르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건갈은 더욱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면서 다리를 건너 산 밑에 이르니 어떤 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그를 부르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일찍이 그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건갈은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고 있으니 그 사나이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졌다.
민망하리만치 정중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번에 당신이 이 길로 부임하는 것을 알고서 미리 다리 밑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올 때는 당신 혼자서 말 타고 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는데 다리 가까이 와서는 갑자기 스님 한 분이 지나가실 뿐 당신도 말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고 한참 지켜보았지만 역시 당신은 보이지 않고 스님 한 분만이 다리를 건너갔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있다 보니 당신이 여전히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겠소.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 하찮은 일가지고 당신과 원한을 맺고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니 이것은 잘못 되었다 생각하오. 당신은 분명히 부처님이 도우시는 사람 같소. 이제 내가 과거 일을 다 풀어버리니 당신도 마음을 놓으시오.」
하는 것이다. 건갈은 한편 놀라고 한편 반가웠다.
자기는 다만 지장보살을 생각하면서 온 것뿐인데 자기 몸이 원수의 눈에는 스님의 모습으로 보였다는 사실과 또 원한품은 사람이 마음을 돌렸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기이하고 다행스러웠다.
건갈도 다정한 태도로 말하였다.
「고맙소이다. 앞으로 잘 지냅시다.」
두 사람은 깨끗이 화해하고 헤어졌다. 건갈은 염불을 하면서 임지로 향하였다.
산을 넘어 들에 이르렀는데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밤이 와서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비마저 소리 없이 내려 으스스 하였다.
밤중이 되자 비바람마저 세차게 불어와 객사를 밝혔던 불이 모두 꺼졌다.
건갈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일어나 앉아 있으니 칠흑 같은 밤인데도 건갈에게는 눈앞이 환히 보였다. 그리고
「어서 가거라, 어서 가거라」
하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렸다.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귓전에 들려왔다. 건갈은 곧 일어서서 떠날 차비를 하였다.
폭풍우속에서도 그의 앞은 환히 밝아 보였다.
그는 밤을 새워 그곳을 지나왔는데 날이 밝고 보니 건갈이 머물고자 하였던 일대는 홍수로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건갈은 새삼 부처님의 은혜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합장하고 목이 메어
「나무지장보살.」
을 잊을 수 없었다.
밤에 그의 앞길을 밝혀준 광명은 그가 모시고 있는 지장보살에게서 발한 것이었으며 <어서가거라> 하고 일러주던 목소리 또한 그 거룩한 빛의 음성이었던 것을 그는 깨닫고 있었다.
건갈이 죽은 것은 청태(淸泰) 2년(서기935년), 그의 나이 78세 때인데 임종하면서 그는 단정히 앉아 합장하고 염불하고 있었다.
그의 상투에서는 유난히 밝은 광명이 퍼져 나와 그의 온 몸을 덮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그는 고요히 잠들었다.

<지장보살영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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