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선스님이 만난 노인 관세음보살

행선스님이 만난 노인 관세음보살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신앙설화

• 주제 : 신앙
• 국가 : 한국
• 시대 : 고구려
• 참고문헌 : 불교설화대사전

고구려에 유학을 왔던 행선(行善)이라는 일본 스님이 고구려 땅에서 겪은 이야기이다.
행선은 고구려에 와서 불교 공부를 열심히 했다.
어느 날 그는 볼 일이 있어 길을 나섰다.
도중에서 갑자기 폭우를 만났는데, 흡사 바가지로 물을 퍼붓는 것같이 비가 쏟아졌다.
길가에 어디 비를 피할 곳도 없고 해서 무작정 빗속을 뚫고 길을 따라 앞으로만 달렸다.
얼마 안가서 냇물을 만나게 되어 다리를 급히 건너갔다.
비는 여전히 억수같이 쏟아 붓고 있었다.
그가 나무로 얽은 다리의 한가운데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냇물이 넘치면서 다리를 휩쓸어 버렸다.
이쪽저쪽이 다 물에 쓸려가 버리고 한가운데 말뚝을 의지하여 손바닥만큼 남은 다리 위에 행선스님은 말뚝을 꽉틀어 잡고 간신히 몸을 버티고 서 있었다.
짙은 흙빛의 황톳물 홍수가 세상을 온통 다 쓸어갈 듯 무서운 소리를 내며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간신히 다리기둥에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행선스님은 눈앞이 아찔하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매달려 있는 다리 기둥도 곧 홍수에 휩쓸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칭념하기 시작하였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그는 문득 인기척에 눈을 떠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보오, 젊은 스님. 빨리 이 배에서 내리시오.」
노인의 그 소리와 함께 언덕으로 훌쩍 뛰어오른 행선스님은 노인에게 인사를 하였다.
「노인 어른. 참으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합장하면서 몸을 배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배도 없고 노인도 그 자리에 없는 것이었다.
그는 비로소 관세음보살님이 노인으로 몸을 나투어 배를 저어 자신을 구제해 주신 것을 알았다.
사실 그 홍수에 어디에 배가 있겠으며, 설사 배가 있다고 한들 성난 물살 위를 어떻게 늙은이가 배를 저어 건널 수가 있겠는가.

설령 큰물에 떠내려가게 되더라도
(야위대수소표,若爲大水所漂)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칭념하면
(칭기명호,稱其名號)
곧 물에 닿게 되느니라.
(즉득천처,卽得淺處) <法葦經 普門品>

부처님의 말씀이 행선스님 앞에 그대로 사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오래오래 합장한 채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로부터 행선스님은 서원을 세워 관세음보살을 새겨서 모시고 밤낮으로 예경을 극진히 하였다.
그 일이 있고부터 고구려에서는 그를 하변(河邊)보살이라고 하였다는 것이 다.
행선은 718년(日本 養老2年)에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때 그 관음상을 가슴에 품고 갔다고 한다.
귀국한 그는 그 보살상을 흥복사(興福寺, 日本절)에 모셨는데, 하루는 그 상이 갑자기 없어져 간 곳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승 행선(行善)이 귀국하였다는 연대를 따져 보면 약간의 문제가 있음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718년, 즉 양로(養老) 2년은 신라 성덕왕(聖德王) 17년으로서 고구려가 나라를 잃은지(고구려는 668년. 즉 보장왕(寶藏王) 27년에 나라를 잃었음) 50년이 지난 뒤의 일이 된다. 그러므로, 그가 고구려에 불법을 배우고자 유학하였으나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50여년 동안 신라에 있다가 귀국한 셈이 된다.
통일된 신라에서 50여년을 살았다면 그도 신라의 불교, 특히 관음신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입었으리라고 짐작한다.
<김영태 교수의 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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