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에 표류된 장춘이 날아오다

먼 나라에 표류된 장춘이 날아오다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신앙설화

• 주제 : 신앙
• 국가 : 한국
• 시대 : 신라
• 지역 : 경상도
• 참고문헌 : 삼국유사

신라 서울 변두리의 우금리(禹里)에 보개(寶開)라는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이 여인에게는 장춘(長春)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장성한 장춘은 장삿길에 올라 바다로 나갔는데, 그 뒤 오래도록 소식이 없었다.
배가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파선되어 배에 탄 사람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러나 보개여인은 아들 장춘을 기다렸다 매일 앞 동구를 바라보며 아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는 민장사로 가서 관세음보살님 앞에 절하고 엎드려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정성으로 빌었다.
영험이 많다는 관세음보살님 앞에 아들의 귀환을 비는 어머니의 정성은 매일 계속되었다.
그러기를 7일, 이레 동안을 꼬박절하고 울면서 기원하였다.
「제발. 제 아들 장춘이가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게 하옵소서.」
눈물 섞인 똑같은 말을 되뇌이며 정성어린 기원을 쉬지 않는 그 모정 앞에, 관음보살은 드디어 기적을 나투었다.
「어머니! 장춘이가 돌아왔어요.」
그 소리를 귀곁으로 들으면서 어머니는 엎드렸던 몸을 일으키며 눈을 크게 떠 보았다.
실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아들 장춘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장춘아!」
어머니는 이 신기한 사실 앞에 말문을 열지 못하고 한동안 아들을 확인이라도 하듯 빤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꿈이 아닌 사실 앞에 두 모자는 끌어안고 만남의 기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다가 이제 왔느냐? 어미가 여기에 있는 줄을 어떻게 알고 이 곳에 왔느냐?」
한참 뒤에 어머니가 아들에게 물어본 말이다.
아들 장춘은 그 동안의 일을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장춘이 탄 장삿배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큰 풍랑을 만났다.
나무로 만든 배는 그 거센 바람과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 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배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깊은 바다에 빠져 죽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장춘도 성난 물결에 휩쓸려 걷잡을 수가 없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자났는지 장춘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의 몸이 배 파편의 판자조각 위에 실려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자기도 모르는 무의식중에 판자조각을 붙들곤 그 위에 몸을 실었던 것 같았다.
그는 기력을 잃은 채 판자에 몸을 싣고 물결의 흐름에 맡겨 어느 바닷가에 닿게 되었다.
그가 파도에 밀려 닿은 곳이 중국 남쪽(吳)의 어느 해안 지방이었다.
바닷가에 쓰려져 있는 그를 그 지방 사람이 지나다가보고는 구해 주었다.
결국, 장춘은 그 사람집의 머슴이 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이제 살아서는 고향에 돌아갈 것 같지도 않은 스스로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면서 그는 그 집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장춘은 들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어머니 생각, 그리운 고향 생각에 잠시 일손을 멈추고 멍하니 신라 쪽을 바라보고는 있었다.
「여 보시게, 젊은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장춘은 눈길을 돌렸다.
그의 앞에는 고국 신라에서 온 듯한 낮선 스님 한 분이 자비로운 얼굴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외국 땅에서 참으로 고생이 많구나. 그래, 고향에 가고·싶지 않은가?」
어머니 품안 같은 그지없이 따뜻한 말씨였다.
「왜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갈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고 싶습니다.」
그는 외치듯 말하였다.
「그럼, 지금 나하고 함께 가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스님은 앞장을 서서 걷기 시작하였다.
장춘이 무어라고 말을 길어볼 겨를도 없이 그 스님은 이미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손에 잡고 있던. 농장기를 팽개치고 홀린 듯 그 뒤를 쫓았다. 놓치면 안될세라 장춘은 무작정 그 스님의 뒤를 달음박질 하듯 뒤따랐다.
한참을 가다 보니 앞에 짙푸르게 깊은 물(바다)이 가로 놓였다.
그 스님은 걸음을 멈추더니 장춘을 한 팔로 꼭 끼었다.
그리고는 훌쩍 높이 뛰어 그 바다를 건너는 것이었다.
그 순간 장춘은 정신이 아찔하였다.
잠시 후, 정신이 든 장춘의 귀에는 그토록 그립던 신라 고향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또 흐느껴 우는 애절한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가 번쩍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민장사의 법당 안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관음보살상을 향해 흐느껴 울면서 간절하게 기원하고 있는 부인이 바로 자기 어머니였던 것이다.
장춘이 그 스님(실은 민장사 관음보살상의 화현)을 따라 중국 오월 땅을 떠난 것이 신시(申時, 오후 3-5시 사이)였는데, 그 어머니 곁에 도착한 때는 겨우 술시(戌時,오후 7~9시)초였다는 것이다.
이날이 바로 경덕왕(景德王) 4년(745)의 4월 8일이었다고 한다.
경덕왕이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민장사에 전답을 시주하셨고, 또 많은 재물을 바쳤다는 것이다.

<三國遺事 卷3搭像 4, 敏藏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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