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화폐

고려의 화폐

고려시대의 화폐. 1. 건원중보  2. 동국통보  3. 동국중보  4. 해동중보  5. 삼한통보  6 삼원중보

고려시대의 화폐.
1. 건원중보 2. 동국통보 3. 동국중보 4. 해동중보 5. 삼한통보 6 삼원중보

시대명 고려

고려 때의 화폐는 물품 화폐와 금속화폐로 구분될 수 있는데, 지배적인 것은 물품화폐로서 주로 포(布)와 미(米)가 사용되었다. 특히 좀 더 운반성이 쉽고 가치의 안정성이 높은 포가 일반적인 교환수단으로서, 가치의 척도로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이때 포화(布貨)로서 기능한 것은 주로 질이 나쁜 마포(麻布)인 추포(麤布)였으나 뒤에 5종포(五綜布, 오승포(五升布))로 바뀌었다.

한편 고려왕조는 그 나름으로 금속화폐 사용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996년(성종 15)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철전(鐵錢)을 주조하여 쓰도록 하는 조처가 있었으나 그리 원활하게 유통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숙종 때는 특히 금속화폐 통용에 적극적인 정책이 행해졌는데, 이는 승려 의천(義天)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1097년(숙종 2)에는 주전관(鑄錢官)을 두어 금속화폐의 유통을 장려케 하고, 1102년에는 해동통보(海東通寶) 등의 전화 1만 5천 관을 주조하여 재추(宰樞)·문무 관료·군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주·현에 명해 미곡을 방출, 주점과 음식점을 열어 이를 유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1101년에는 은 1근으로 우리나라 지형을 본뜬 은병(銀甁)을 만들었는데, 활구(濶口)라는 속명을 가진 이 은병은 하나의 값이 포 100여 필이나 되어 일부 귀족들 간에 한해 유통되었을 것으로 본다. 해동통보 등의 엽전도 도시에서는 상당히 활발하게 유통되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지방에서는 그렇지 못해 여전히 포·미 등이 주로 화폐구실을 했던 것 같다. 1391년(공양왕 3)에는 저화(楮貨)라는 지폐를 발행하기도 했으나 고려 멸망과 함께 그 유통이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