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성

9성

[ 九城 ]

시대명 고려

1108년(예종 3)에 이 을 이끌고 을 정벌한 후 쌓은 9개의 성.

1107년(예종 2) 12월 윤관을 원수(元帥)로 하는 고려의 17만 대군은 여진족을 소탕하고 다음해까지 이 지역에 9성을 쌓았는데, 웅주(雄州)·영주(英州)·복주(福州)·길주(吉州)·함주(咸州)·공험진(公嶮鎭)·숭녕진(崇寧鎭)·진양진(眞陽鎭)·통태진(通泰鎭) 등이 그것이다. 9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제시되고 있는데, 특히 위치설정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공험진이다. 일제하에서 일인 학자들은 이를 함흥평야 일대로 비정했으나, 공험진의 위치를 두만강북(豆滿江北)으로 잡아 그 이남으로부터 정평(定平)까지의 함경도 일대에 걸쳐 있었다는 설이 조선 초기의 일반적인 인식이었으며, 최근에 이르러 이 주장을 수용하려는 의견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이후 근거지를 잃은 여진족이 완옌부(完顔部)를 중심으로 해 조직적인 무력항쟁을 펴 전세가 고려 쪽에 차츰 불리해졌다. 이에 윤관 등이 다시 출정했으나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쪽에서 9성의 환부를 애걸해오자 조정에서는 수차에 걸쳐 논의한 끝에, 9성간의 거리가 너무 멀 뿐 아니라 골짜기가 거칠고 깊어 지키기가 어려우며 군사징발로 들의 원망이 일어난다는 등의 이유로 1109년 환부를 결정하고 곧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