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

남경

[ 南京 ]

시대명 고려

고려 유수경(留守京)의 하나.

고려 초기에는 수도인 개경 이외에 평양에 (西京), 경주에 동경(東京) 등 2경을 설치해 중시했는데, 중기에는 양주(楊州)에 남경이 건설되어 개경·서경과 함께 3경이라 칭해졌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남경이 처음 건설된 것이 1067년(문종 21)이라 했으나, 남경 개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숙종 이후이다. 1096년(숙종 1)에는 남경에 도성(都城)을 건립할 것을 청했으며, 1099년에는 재신(宰臣)과 일관(日官)에게 양주에 남경을 건설할 것을 의논하게 한 후 왕이 양주에 가서 도읍으로 정할 땅을 살펴보기까지 했으며, 1104년에는 남경에 궁궐이 이룩되어 왕이 남경에 거둥하게 되었다. 이후 예종·인종 대에는 왕의 남경행차가 빈번히 나타나 남경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남경 개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이를 거점으로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한 국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현종 대에 정비된 고려의 지방제도는 주목(州牧)을 거점으로 이를 통해 중앙의 명령을 전달하는 체계였다. 그러나 중앙정부에서는 중앙에서 직접 제 지역을 파악하고 명령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체제로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했는데, 남경 개척은 이러한 의도가 반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인종 대에 정비된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 22역도)에 남경을 중심으로 도로망이 정비된 것은 이러한 남경 설치의 의의를 반영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