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종

광종

[ 光宗 ]

시대 고려
출생 - 사망 925년 ~ 975년
본명 소(昭)
이명 : 일화(日華)
시호 : 대성(大成)
직업
재위기간 949년 ~ 975년

고려 제4대 왕. 재위 949~975. 이름은 소(昭), 자는 일화(日華), 시호는 대성(大成).

태조의 셋째 아들이며 정종의 친동생으로 949년 정종의 내선을 받아 즉위했다. 제2대 혜종과 제3대 정종이 각각 박술회·왕식렴이라는 강력한 호족세력의 도움으로 왕권을 유지한 것과는 달리 광종은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쌓아 고려 초기 왕권확립에 큰 몫을 했다. 956년(광종 7) 노비안검법을 실시해 호족들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958년에는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도를 시행, 국초 이래 큰 정치세력을 갖고 있던 공신들을 정치적으로 약화시키고, 신진인사를 기용함으로써 정권의 안정을 도모했다.

960년(광종 11)에는 백관의 공복을 제정해 왕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체제의 위계질서를 갖추었으며, 「광덕(光德)」「준풍(峻豊)」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개경을 황도(皇都)로 삼는 등 왕권의 위엄을 세웠다. 한편 과거제도를 통해 신진세력을 등용하고 시위군졸을 육성해 왕권을 굳히고 뒷받침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육성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개혁정치가 일단락되는 960년 이후에는 호족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으나, 호족들을 비롯한 정치적 적대세력의 반발도 거세어 왕권강화책을 지지하고 후원해주는 보다 광범위한 세력구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963년 귀법사(歸法寺)를 창건하고 이곳에 제위보(濟危寶)를 설치해 각종 법회와 재회를 개설하고, 967년에는 혜거(惠居)를 국사(國師), 탄문(坦文)을 왕사(王師)로 삼아 국사·왕사제도를 처음으로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불교정책으로 불교진흥에 노력했다. 이는 불교세력을 통해 호족세력에 반발하는 일반 민중들을 포섭해 개혁을 지지하는 사회적 세력으로 삼고자하는 의도도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광종의 일련의 개혁정책은 호족세력의 약화와 왕권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지방에 침투하지 못한 한계성이 있었다. 또한 그가 죽고 경종이 즉위한 후 대대적인 반광종운동이 일어난 사실로 미루어 호족세력을 완전히 왕권에 굴복시키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치적은 뒤에 고려가 새로운 국가체제와 정치질서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