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위

6위

[ 六衛 ]

시대명 고려

고려 전기의 중앙군 조직.

고려의 중앙군은 과 6위의 조직으로 편성되었는데, 이 중 6위는 좌우위(左右衛)·신호위(神虎衛)·흥위위(興威衛)·금오위(金吾衛)·천우위(千牛衛)·감문위(監門衛)를 일컫는 것으로, 2군이 친위부대인 데 비해 주로 전투부대로서 경군의 핵심을 이룬다. 이 중에서도 좌우·신호·흥위의 3위가 경군의 핵심이 되는 주력부대로서, 이는 그 군사수가 32령(領), 즉 3만 2천 명으로 전체 중앙군 45령 4만 5천 명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3위의 군사는 평상시에는 개경을 지키고 1년 교대의 변방지역 방수(防戍)에 복무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중·전·후·좌·우의 5군 편제를 이루어 전투에 나섰다. 금오위는 수도치안을 책임진 경찰부대였으며, 천우위는 왕을 시종하는 의장대, 감문위는 궁성 내외의 문(門)을 수위하는 임무를 맡은 부대였다. 이들 6위, 특히 좌우·신호·흥위의 3위에 속해 있는 부대는 (保勝)과 (精勇)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보군(步軍)과 마군(馬軍)의 병종별 구분으로 추측된다. 2군 6위는 각각 정·부지휘관으로 상장군과 대장군이 있었으며, 이들 8개 군단의 상장군과 대장군 16명은 그들의 합좌기관으로 을 두었다. 2군 6위 밑의 단위부대는 령(領)인데 이는 군인 천 명으로 구성된 단위부대로서 그 지휘관은 장군(將軍, 정4품)이었으며 이들도 그들의 합좌기관인 장군방(將軍房)을 가지고 있었다.

6위조직은 고려 초 들이 거느린 사병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초 대부분의 군사력은 호족들이 거느리고 있었던 사병이었고 호족들은 여전히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권이 강화되면서 호족의 군사적 기반인 사병들도 자연히 왕권하에 예속되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때에 6위(六衛)가 편성된 것이다. 6위의 구성원은 본래 호족세력 기반하의 농민으로 호족들의 경제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6위는 이들의 군인적 성격과 농민적 성격을 유지시킬 필요에서 당의 부병제를 모방하여 운영되었다. 의 보승(保勝)과 정용(精勇)은 6위를 구성하는 보승·정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운영된 듯하다. 종래 고려의 군사제도에 대해서는 부병제설과 군반제설이 대립되어왔으나, 경군인 2군과 6위는 일원적인 성격의 군인이 아니라 2군은 군반제에 의해 운영된 전문군인인 반면 6위는 부병제에 의해 동원된 농민군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