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양

김치양

[ 金致陽 ]

시대 고려
출생 - 사망 미상 ~ 1009년(목종 12년)

고려 목종 때의 권신(權臣). 동주(洞州, 서흥(瑞興))사람. 목종의 어머니인 헌애왕후(獻哀王后, 천추태후(千秋太后)) 황보씨(皇甫氏)의 외족.

일찍이 중을 사칭하고 천추궁에 드나들며 추문이 있어 이 멀리 장배(杖配)했으나 목종이 즉위한 후 천추태후가 소환, 합문통사사인(閤門通事舍人)에 이어 우복야(右僕射) 겸 사(三司事)에 올라 권세를 휘둘렀다. 성종에 의해 구체화된 유교적 정치체제에 반발, 목종으로 하여금 네 차례나 행차를 하게 했으며, 그때마다 방옥(方獄)과 주진(州鎭)의 신기(神祈)에 대한 재제(齋祭)의 의식을 가지게 했다. 또한 자기 출신지인 서흥에 성수사(星宿寺)라는 사당을 짓고 궁성 서북에 시왕사(十王寺)를 지어 도교·불교 및 토속신앙을 내세워 유교를 배척하고자 했다.

1003년(목종 6) 태후와 사통해 아들을 낳자 이를 왕의 후사로 삼고자 대량원군 순(大良院君詢, 현종 2)을 숭경사(崇敬寺)에 출가시키고, 그 뒤 다시 삼각산 신혈사(新穴寺)로 옮겨 은둔시킨 뒤 여러 차례 자객을 보내 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또한 목종이 병이 들자 목종을 해하려 했으나 음모가 발각되어 실패했으며, 결국 (康兆)의 정변으로 그의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