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사

병마사

[ 兵馬使 ]

시대명 고려

고려 때의 관직·관제.

병마사는 비상시 군의 출동이 필요할 때 임명되는 지휘관으로서, 이에는 중앙군의 전투동원을 위한 조직인 5군(五軍)지휘관으로서 각기 중·전·후·좌·우군 병마사를 비롯하여, 어떤 시기에 임해 출동하는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행영병마사(行營兵馬使), 사태에 따라 추가하여 파견하는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가발병마사(加發兵馬使) 등이 있었다. 이 관제는 북방의 특수지역인 에 군사·행정을 담당하는 기구로 두어졌다. 양계병마사가 처음 설치된 것은 989년( 8)이지만, 이들이 군지휘관으로서뿐 아니라 양계지역의 장관으로 기능한 것은 현종 때부터인 듯하다.

병마사 기구의 구성은 병마사(3품) 1인, 지병마사(知兵馬使, 3품) 1인, 병마부사(兵馬副使, 4품) 2인, 병마판관(兵馬判官, 5~6품) 3인, 병마녹사(兵馬錄事) 4인이었다. 병마사는 양계지역의 군정과 민정을 총괄하는 장관으로서, 그 휘하로 각기 서북면에서 안북(영주, 寧州)·동북면에는 안변도호부(등주, 登州)를 두고, 다시 그 아래에 각 주·진을 소속시켜 일원적인 지배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계병마사제는 침입으로 고려가 양계지역 대부분의 지배권을 상실함으로써 소멸되었다. 그 후 몽골세력이 물러난 이후 임시로 설치되기도 했으나 종래와 같은 기능은 상실한 듯하며, 공양왕 때에는 양계에도 5도와 같이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가 설치되어, 양계의 장관으로서의 병마사제도는 사실상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