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총의 난

조위총의 난

[ 趙位寵-亂 ]

시대명 고려
연도 1174년(명종 4년)

1174년(명종 4) 유수 이 무신정권에 반대해 일으킨 반란.

당시 서경유수로 있던 조위총은 무신정권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투쟁기세가 고조되자 그것을 이용해 정권을 탈취하기 위한 반란을 준비했다. 반란의 기회를 노려오던 그는 이 국왕 의종을 죽인 것을 계기로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동계와 북계의 여러 성들에 격문을 보내 「무신정권이 북계 일대의 여러 성을 공격하려 한다」고 하며 대항해서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에 호응해 절령(岊嶺, 자비령) 이북 40여 성이 호응했다. 개경에서는 토벌군을 조직해 파견했으나 서경군은 이를 절령에서 격파하고 개경까지 진격했다. 이에 이의방이 군대를 지휘하여 반격, 서경까지 밀고 왔으나 추위로 다시 퇴각했다.

1174년 11월, 토벌군이 다시 서경을 공격하자 조위총은 금나라에 원병을 요청했으나 실패하고, 장기간에 걸친 공방전 끝에 1176년(명종 6) 서경이 함락되고, 조위총의 거사는 반기를 든지 22개월 만에 실패했다. 조위총의 난은 지배층 내부의 정권을 둘러싼 싸움이었으나 그중심세력은 여기에 참가했던 절령 이북의 40여 성의 민중들로서, 이는 무신정권에 항거한 민중항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반란이 실패한 이후에도 여기에 참가했던 하층민들은 서경을 중심으로 계속 항쟁했고(조위총 여중(餘衆)의 봉기 1177~1178), 이는 이 무렵 서북지방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