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성 전투

충주성 전투

[ 忠州城戰鬪 ]

시대명 고려
연도 1253년(고종 40년)

1253년(고종 40) 의 제5차 침입 때 의 지휘를 받은 충주 군민들이 몽골군을 물리친 전투.

1253년 주장(主將) 야굴(也窟)과 부장(副將) 아모간(阿母侃)의 지휘 아래 반역자 홍복원(洪福源) 등의 인도를 받으며 고려에 침입한 몽골군의 주력은, 대동강을 건너 동주(東州, 철원)·춘주(春州, 춘천)·양근(陽根, 양평)·양주(襄州, 양양) 등을 유린하고 충주성을 포위했다. 당시 충주성에는 처인성전투를 지휘했던 김윤후(金允侯)가 낭장(郎將)으로 충주성의 방호별감(防護別監)에 임명되어 있었다. 70여 일에 걸친 몽골군의 공격을 받아 성안의 식량이 다 떨어지게 되자, 김윤후는 사졸들을 독려하여 이르기를, 「만일 힘을 다한다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관작을 내리겠다」라고 하며 관노의 부적을 불사르고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누어주었다. 이에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대적하여 결국 몽골군을 물리쳤다.

이 전투의 승리는 몽골군의 남진을 좌절시켜 경상도 지역에 대한 전쟁 피해의 확대를 막았으며, 몽골로 하여금 화의를 명분삼아 서둘러 철군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윤후는 이 전투의 공으로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이 되었으며, 충주는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