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

왕후

[ 王煦 ]

시대 고려
출생 - 사망 1296년(충렬왕 22년) ~ 1349년(충정왕 1년)
본관 안동(安東)
이명 시호 : 정헌(正獻)
초명 : 권재(權載)
이칭 : 탈환(脫歡)
직업 문신

고려 후기의 문신. 원래 성은 권(權), 본관은 안동(安東). 처음 이름은 권재(權載), 이름은 탈환(脫歡)이다.

의 신임을 받던 아버지와 형을 배경으로 관직에 올랐으며, 충선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아들로 삼자 왕후라는 성명을 하사받고 종실의 일원으로 대접받았다.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매부인 (李齊賢)과 함께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며, 고려의 폐정개혁에 관심을 나타내는 원나라의 태도에 힘입어, 수상인 우정승(右政丞)이 되자 (政房)을 폐지하고 인사권을 (典理司)와 (軍簿司)에 귀속시키고 을 복구·정비하는 등 개혁을 시도했다. 이는 반대파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1347년 (整治都監)을 설치하여 본격적인 개혁운동을 전개했다.

정치도감은 사업 등의 적극적인 정치사업을 추진하며 개혁을 시도했으나, 기황후(奇皇后)의 일족인 기삼만(奇三萬)이 토지를 불법적으로 빼앗아 독점한 일을 징벌하여 매를 쳐 가두었다가 옥사(獄死)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좌절되고 말았다. 이해 충목왕이 급작스럽게 죽자 왕위계승 후보자로서 충혜왕의 동모제(同母弟)인 왕기(王琪, 뒤의 )를 추대하는 운동을 전개했으나 실패하고 귀국도중 병사했다. 뒷날 공민왕이 즉위한 뒤 정헌(正獻)이란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