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청

해동청

[ 海東靑 ]

시대명 고려

사냥용 매의 일종.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진평왕이 사냥하기를 즐겨 매나 개를 놓아 돼지나 꿩, 토끼를 잡으러 다녔다는 기록이 보이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사람을 통해 매사냥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매사냥을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후기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자, 매사냥을 즐기던 몽골인을 위해 해동청과 같은 매를 자주 하여, 매사냥의 기관으로 (鷹坊)을 설치하기도 했다.

에서는 해동청을 「송골매」라고 하고 요동에서 나며 청색이라고 했고,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그해에 나서 길들여진 매를 보라매라 하는데, 보라라는 것은 방언으로, 담홍색이며 털빛이 얕음을 말한다. 산에 있으면서 여러 해 된 것을 산진(山陣)이라 하고, 집에 있으면서 여러 해 된 것을 수진(手陳)이라 하는데, 후자는 매 중에 가장 재주가 뛰어나며 흰것을 송골(松鶻), 청색인 것을 해동청이라 한다」며 그 종류를 상세히 설명했다. <조선어사전>에서는 「매의 일종으로 조선의 동북지방에서 나며, 8, 9월경에 남쪽에서 온다(속칭 보라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