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항

최항

[ 崔沆 ]

시대 고려
출생 - 사망 미상 ~ 1257(고종 44)
이명 초명 : 만전(萬全)
직업 고려 무신정권기의 실권자

고려무신정권기의 실권자. 처음 이름은 만전(萬全), 아버지는 이(怡). 어머니는 이의 첩 서련방(瑞連房)이다.

처음에 송광사(松廣寺)에서 중이 되어 쌍봉사(雙峰寺)에 주지로 있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와 항으로 개명했다. 속세로 돌아온 후 좌우위상호군 호부상서(左右衛上護軍戶部尙書)가 되었다가 최이가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로 옮기게 하고 가병(家兵) 5백을 나누어주었다. 1249년(고종 36) 아버지 최이가 죽자 지이부사 상장군(知吏部事上將軍) 주숙(周肅)이 야별초와 내·외도방을 이끌고 왕정복구를 꾀하려다 이공주(李公柱)·최양백(崔良伯)·김준(金俊) 등 70여 명이 최항에게 붙자 주숙도 이에 합세함으로써 집권이 가능하게 되었다. 병부상서(兵部尙書)가 되고 이어 동서북면병마사(東西北面兵馬使)를 겸했으며 교정별감(敎定別監)이 되었다.

집권과정에서 사병세력이 왕정복구를 기도하는 등 위기를 맛보았던 최항은 집정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하게 할 필요를 느껴 반대파 숙청에 나서, 우선 인심을 얻고 있는 민희(閔曦)·김경손(金慶孫)을 해도(海島)로 유배하고 또 전대 최이의 세력들을 귀양보내는 한편 최이의 심복이었던 주숙(周肅)을 죽이는 등 구세력을 제거해 그의 지위를 확고하게 했다. 한편 교정별감첩(敎定別監牒)으로 각 지방의 세공(稅貢)을 제하고 또 지방의 조부(租賦)를 징수하던 교정수확원(敎定收獲員)을 철수시키는 동시에 안찰사로 하여금 그 임무를 담당케 하여 인심을 얻기도 했다. 이와 같이 집정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한 후 교정도감(敎定都監)을 중심으로 무인정치를 행하다가 1257년 병사, 그의 여종에게서 낳은 아들 최의(崔誼)가 4대집정을 세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