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

김부식

[ 金富軾 ]

시대 고려
출생 - 사망 1075년(문종 29년) ~ 1151년(의종 5년)
본관 경주(慶州)
이명 : 입지(立之)
: 뇌천(雷川)
직업 유학자, 역사가, 정치가, 문학가

고려 중기의 유학자·역사가·정치가·문학가.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 본관은 경주.

왕실의 후예로 그의 증조부가 에게 귀의하여 경주의 이 되었으며, 아버지 때부터 중앙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096년(숙종 1) 에 급제한 후 관직을 두루 거쳐 직한림원(直翰林院)에 발탁되었으며, 이후 20여 년 동안 한림원 등의 문한직(文翰職)에 종사하면서 왕에게 경사(經史)를 강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인종이 즉위해 이 권세를 잡았을 때 군신의 예를 논해 이자겸에게 자기의견을 따르게 했으며, 박승중(朴昇中)·정극영(鄭克永)과 함께 실록>을 편찬했다. 1126년(인종 4)에 이자겸이 제거된 이후 계속 승진,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1134년(인종 12)에는 등의 천도에 반대해 왕의 서행(西幸)을 중지케 했으며, 이듬해 정월 묘청(妙淸)·조광(趙匡)·유참(柳旵) 등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원수(元帥)가 되어 먼저 정지상(鄭知常)·김안(金安)·백수한(白壽翰) 등을 제거하고 진격, 이듬해 이를 평정했다. 그 공으로 공신의 호를 받았으며, 그 후 태학사 태자태사(集賢殿太學士太子太師)의 벼슬을 지냈다. 1145년(인종 23)에 삼국사기(三國史記)> 50권의 편찬을 마쳤으며, 의종 즉위 후에는 <인조실록>을 편찬했다. 고문체 문장을 보급하는데 노력했으며, 문집 20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1125년(인종 3)에 그가 지은 대각국사비문(大覺國師碑文)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