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맹파업

구로동맹파업

[ 九老同盟罷業 ]

시대명 현대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김준용 위원장의 구속으로 시작, 민주노조 탄압에 연대투쟁으로 맞선 구로지역 민주노조들의 동맹파업.

1985년 6월 22일 구로 지역의 중심 노조였던 대우어패럴 김준용 위원장에 대한 정부의 구속조치가 파업의 발단이 되었다. 84년 결성과정에서부터 공동교육·임투지원 등 연대활동을 강화했던 대우어패럴·효성물산·가리봉전자·선일섬유노조는 6월 23일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대우어패럴에 대한 탄압을 <민주노조탄압의 신호탄>으로 인식하고 동맹파업을 결정했다. 6월 24일 대우어패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것을 신호로 효성물산·가리봉전자·선일섬유가 즉각 파업에 돌입했고, 25일에는 남성전기·롬코리아가, 28일에는 부흥사 노조가 동맹파업에 가담함으로써 참여 노조 숫자는 총 10개, 노조원 약 2천 5백여 명에 달했다.

또한 26일에는 동맹파업을 지지하는 노동자·학생·재야단체가 가리봉 5거리에서 가두사위를 벌였으며, 농성해산 당일에는 10여 명의 학생들이 지붕을 넘어 대우어패럴 농성장에 합류하기도 했으나, 동조파업을 벌이던 노조들이 모두 강제해산당한 뒤 외롭게 농성을 벌이던 대우어패럴마저 29일 오전 8시 농성장 벽을 뚫고 진입한 회사 측의 보복조치로 노조는 모두 파괴되고, 1천 2백 명에 달하는 노조간부와 핵심조합원들이 해고되는 등 구로동맹파업은 많은 피해를 내고 끝났다. 이 동맹파업은 46년 이래 구속자석방·노조운동탄압저지 등 정치적 요구를 내건 최초의 동맹파업으로서, 이후 (서노련)을 탄생시키면서 변혁지향적 을 출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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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6공화국의 출범
4. 산업구조조정과 독점자본의 재편
5. 80년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구로동맹파업 지금 읽는 중
6. 80년대 학생운동과 재야단체
7. 북한의 개방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