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 -美文化院占據籠城事件 ]

시대명 현대
연도 1985년 ~ 1985년

1985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학생운동의 반합법투쟁기구인 삼민투위(三民鬪委) 주도하에 서울의 5개대 남녀학생 73명이 연합으로 서울 미문화원을 기습 점거, 농성을 벌인 사건.

에서 <바람>을 일으킨 학생들은 4월 17일 고려대에서 대중조직으로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을 결성하는 한편, 전위적 투쟁조직인 삼민투위를 대학별로 결성, 민생문제와 외채문제, 방미반대 등의 이슈를 내걸고 투쟁을 전개하다가, 계승기간을 맞아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폭로·규탄하기 위해 미문화원 점거농성계획을 세웠다. 미문화원 도서관에 들어간 대학생들은 <광주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사과하라>는 등의 구호를 내붙이고 주한 미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72시간 만에 스스로 농성을 풀고 나와 경찰에 모두 연행됐다.

이 사건으로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함운경(咸雲炅, 21살, 물리학과 4년) 등 20명이 구속 기소됐으나, 사법사상 초유의 피고들의 재판거부사태·묵비권행사·재판부기피신청·변호인단 전원 사임 등 재판과정 역시 파란으로 점철되었다. 10·26 이후에 미국정부가 취한 태도를 공식적으로 비판, 내외의 주목을 끈 이 사건으로 윤성민(尹誠敏) 국방부장관은 국회 국방위 답변형식으로 <광주사태의 전모>를 발표해야 했으며, 워커 주한미대사도 「광주사태는 한국내의 문제로 미국이 책임질 것이 없다」는 해명성의 발언을 하게 되었다.

한편 경찰은 84년 이후 「대학총학장의 요청 없이는 경찰을 대학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6월 29일 새벽,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9개대에 467명의 경찰병력을 투입, 삼민투위 관련자 66명을 연행함으로써 학원에 대한 정부의 강경방침으로의 선회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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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화원 농성을 푼 삼민투 학생들.

미문화원 농성을 푼 삼민투 학생들.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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