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자유당

민주자유당

[ 民主自由黨 ]

약어 민자당
시대명 현대

여야 수뇌의 정치협상에 의해 ··의 3당합당으로 1990년 1월 22일 출범한 거대여당. 약칭 민자당.

여야 타협하에 정호용의원 공직사퇴와 국회증언을 끝으로 을 마무리 지은 여권세력은 4당구조 타파를 위한 정계 개편작업에 본격 착수, 1월 11일부터 13일까지 3김총재와 연쇄적으로 청와대 개별 영수회담을 갖고 정계개편문제를 논의한 끝에 3당통합에 대한 합의를 도출, 민자당을 출범시켰다. 민자당은 2월 9일 합당대회를 개최, 「세계질서가 재편성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자기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는 현실은 우리의 정치가 창조적인 개혁으로 새로워질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청신한 국민정당의 등장이야말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길임을 굳게 믿는다」고 선언하고, ①성숙한 민주정치 구현 ②지속적인 경제성장, 복지경제 실현 ③공동체사회 구축 ④교육의 자율성과 기회균등 보장, 민족문화 창달 ⑤평화적 민족통일과 자주적 외교노력 등 5개항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이어 5월 9일의 전당대회에서는 를 총재로, 을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 <구국적 결단> 등 3당합당 주도세력의 주장과 △4당구조의 불합리와 폐해 △내외의 급격한 정치여건 변화 △인물과 지연에 따른 정치권의 분열현상 등의 창당명분을 내세웠으나, 정계개편에서 소외된 평민당과 재야 쪽에서는 장기집권을 위해 국민의사를 무시한 채 밀실에서 야합한 일종의 정치적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창당 이후 민자당은 당내 파벌싸움으로 국민의 눈총을 받는 가운데 부동산가격 폭등사태·물가고·증시침체 등의 경제난국을 가속화시킨데다 후퇴와 금융실명제 보류 등으로 당초 약속한 <창조적 개혁>에 역행, 국민의 인기를 크게 잃어 4·3보궐선거>에서 사실상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또한 7월 임시국회에서 방송법·조직법·광주관련법·추경예산 등의 날치기 통과로 야당 국회의원 전원의 의원직사퇴서 제출파동을 일으켜 정국을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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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월항쟁과 5공화국의 몰락
3. 제6공화국의 출범
민주자유당 지금 읽는 중
4. 산업구조조정과 독점자본의 재편
5. 80년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6. 80년대 학생운동과 재야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