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사태

사북사태

[ 舍北事態 ]

시대명 현대

10·26사태 이후 1980년 서울의 봄>으로 고조된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발생하여 80년대 노동자투쟁의 발화점이 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산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파업의 배경은 목숨을 저당잡힌 막장노동이라는 극도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으로 사태의 직접적 발단은 10여 년 동안 회사의 편에 서서 어용노조 위원장으로 행세하던 이재기가 당시 전국광산노련의 임금인상률 42.75%를 무시하고 회사와 담합, 4월 15일 일방적으로 20% 인상을 결정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회 전반의 민주화 열기로 고조된 노동자들은 즉시 <위원장 사퇴, 임금인상>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1명이 저지하는 경찰차에 깔려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해 극도로 흥분한 노동자 수천 명은 경찰을 몰아내고 불만의 표적이었던 어용노조간부의 집을 습격, 이재기의 처를 린치하는 등 과격한 행동으로 나아갔다.

이후 투쟁양상은 무장경찰과 광부들의 무력 충돌로 발전, 사북 일대는 행정마비에 빠졌으나, 노동자들의 자율적인 통제로 단 한 건의 치안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태는 24일 <이재기 지부장 사퇴, 경찰 실력행사 삼가> 등의 합의사항으로 종결되었으나, 당국은 31명의 노동자들을 구속했다. 노동자들의 잠재적 투쟁력을 과시, 변혁주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킨 사북사태는 이후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촉발시키는 등 80년대 노동운동의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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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사태

사북사태 광부와 가족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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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6공화국의 출범
4. 산업구조조정과 독점자본의 재편
5. 80년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사북사태 지금 읽는 중
6. 80년대 학생운동과 재야단체
7. 북한의 개방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