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택시기사시위

대구택시기사시위

[ 大邱-技士示威 ]

시대명 현대

1984년 유화조치로 이완된 정세하에서 대구지역을 기점으로 서울·부산 등 대도시로 확산된 택시노동자들의 가두시위.

과중한 사납금, 취업 카드제의 악용,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인한 불만이 누적되어 일어났다. 몇 차례의 시위계획이 무산되었던 대구 택시기사들은 유화조치 이후인 84년 5월 25일 <사납금 인하·부제 완화·취업카드제 철폐>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대구시청 앞 도로를 5백여 대의 차량으로 봉쇄, 가두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이들의 시위를 강제해산시키려 했으나 택시기사들의 완강한 투쟁으로 실패하고, 일부 기사들이 10여 대의 택시를 파괴하는 등 투쟁이 격렬한 양상으로 발전해가자 대구시청과 경찰이 중재에 나서 사납금인하, LPG 충전 자율화, 집단행동을 불문에 부칠 것 등을 약속함으로써 시위는 진정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당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위에 참가한 기사들을 대규모 연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에 항의 하는 시위가 27일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대구지역의 시위는 시위대의 대규모 연행으로 일단락 지어졌으나, 이후 5월 말에서 6월 초에 걸쳐 경북 경산·구미, 충남 대전, 서울 새한콜택시, 부산 등으로 시위가 확산, 곳곳에서 택시기사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대구택시기사 시위는 자연발생적인 시위로 끝났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택시노조가 결성되었고, 84년 이후 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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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6공화국의 출범
4. 산업구조조정과 독점자본의 재편
5. 80년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대구택시기사시위 지금 읽는 중
6. 80년대 학생운동과 재야단체
7. 북한의 개방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