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고향방문단

남북한고향방문단

[ 南北韓故鄕訪問團 ]

시대명 현대

1985년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남북한 쌍방 151명씩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이 상호교환 방문한 일.

84년 9월 북한 측의 대남 수재물자 제공제의와 남한 측의 수락을 계기로 재개된 남북대화는 85년 들어 ·경제회담·국회회담 예비접촉·체육회담 등 4갈래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12년 만에 재개되어 85년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제8차 본회담에서는 「광복절 40주년을 전후하여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을 추진하기로」 합의, 온 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후 3차례에 걸친 실무대표접촉 끝에 △방문단 규모=151명(단장 1, 고향방문단 50, 예술공연단 50, 기자 30, 지원인원 20명) △방문지역=서울과 평양 △방문기간=9월 20~23일(3박 4일) △교환방법=동시교환 △공연회수=2회 △공연내용=정치성격 배제, 전통민족가무 중심 등의 구체적 문제에 합의함으로써 남북한 고향방문이 실현되었다.

이에 9월 20일 김상협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인솔하는 우리 측 방문단 151명과 손성필(孫成弼) 북한적십자회 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측 방문단 151명이 판문점을 거쳐 평양과 서울을 각각 방문, 우리 측 고향방문단 50명 중 35명이 41명의 북쪽 가족들과 상봉하고 북한 측 고향방문단 30명이 51명의 남쪽 가족 및 친척들과 만났으며, 21일과 22일에는 평양대극장과 서울의 중앙국립극장에서 예술공연을 가진 뒤 23일 판문점을 통과, 각자 자기 측 지역으로 돌아갔다.

남북한고향방문단은 민족통일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폭발시켜 전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나,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일회적 사건에 그친데다 체제간의 장벽, 인간의 이질화 등 분단 40년의 세월이 파놓은 깊은 골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어 분단으로 인한 민족적 통한을 심화시켜주기도 했다.

관련이미지

다시 헤어지는 남북의 형제.

다시 헤어지는 남북의 형제.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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