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조범지의 인연

장조범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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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인연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찬집백연경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 그 성중에 질사라는 범지가 있어서 그가 아들, 딸 두 남매를 두었으니 아들의 이름은 장조(長爪)이고 딸의 이름은 사리(舍利)이었다.
그 아들 장조는 총명 박식하고 의론이 밝아서 그 누님 사리와 함께 무엇을 논란할 때 언제나 누님보다 뛰어 났었는데, 그의 누님이 임신한 뒤부터는 같이 논란함에 있어서 아우가 또 누님보다 뒤떨어지게 되므로, 때에 아우 장조가 생각하기를,
「과거엔 모든 논란에 있어서 내가 항상 누님보다 뛰어났는데 이제 누님이 임신함으로 도리어 내가 뒤떨어지게 되니, 이는 틀림없이 태중에 있는 아이 복덕의 힘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아이가 출생해서는 그 의론이 나보다 뛰어나기 마련이리니, 내가 이제부터 외방에 널리 유학하여 4위타경전(聿陀經典)을 비롯한 8종류술법을 다 배운 뒤에 돌아와서 생질과 함께 논란을 시작하리라」
하고는, 곧 남천축으로 가서 모든 이론을 배웠다.
한편 그 누님은 열달만에 아들아이를 낳아서 이름을 사리푸트라라 하였으니, 그 용모가 단정 수특하고 총명이 뛰어나 모든 경론을 널리 통달하여 함께 수작할 상대가 없었다.
때에 라자그리하 온 성중의 범지들이 큰 금고(金鼓)를 치면서 18억 군중들을 논장(論場)에 불러 모으고는, 네 군데 높은 자리를 깔아 두었는데, 그 때 사리푸트라가 겨우 여덟 살 동자로서 논장에 나타나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저 네 군데의 높은 자리는 누구를 위해 깔아 둔 것입니까.」
『첫째는 국왕이요, 둘째는 태자며, 셋째는 대신이고, 넷째는 논사(論士)이오.』
이 말을 들은 사리푸트리가 곧 논사의 높은 자리 위에 올라앉으므로, 그 때 여러 덕망이 있는 이와 나이 많은 범지를 비롯한 일체 도중들이 죄다 놀래고 이상하게 여겨 서로 염언(念言)하되,
「우리 논사들이 저 조그마한 아이와 함께 논란하여 이긴들 무슨 영광이 되리오마는, 만약 이기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겠느냐.」
하고서, 곧 아랫자리에 있는 조그마한 바라문을 보내 사리푸트라와 같이 서로 문답하게 하였다.
그러나 작은 바라문은 물론 그 여러 바라문들이 모두 이치에 꺾이고 말이 모자라서 차츰차츰 나간 것이 상좌(上座)까지에 이르렀는데 그도 몇 마디 논란에 졌으므로 그 누구도 따를 이가 없었다.
때에 사리푸트라는 논의에 이기매 그 훌륭할 명성이 멀리 16대국에 떨치었고, 지혜와 학식이 뛰어나서 짝할 이가 없었다.
그 뒤 어느 때 사리푸트라가 라자그리하의 높은 누각 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두루 살핀 끝에 마침 온 성중의 인민들이 어떤 명절의 모임에 우글거리는 것을 보고 곧 스스로 생각하되,
「저 꾸물거리는 중생들이 백년 뒤에는 다 없어지고야 말 것이다.」
하고는 높은 누각에서 내려와 어떤 외도의 법을 따라 출가하였는데, 그 때가 바로 세존께서 처음 성불할 때였다.
부처님의 제자 아비(阿毘)비구가 라자그리하 성중에 걸식하러 나갔는데, 마침 사리푸트라가 그 걸식하는 비구의 조용한 위의를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복덕이 훌륭하구나. 이제까지 이러한 비구를 보지 못했노라」
하고는, 곧 그 앞에 나아가 물었다.
『그대의 섬기는 스승이 누구이기에 법도가 그렇게 훌륭합니까.』
『나의 스승 하늘의 하늘께선 3계에 더없는 높으신 이라 장육의 몸 모습 갖추어 신통으로 허공에 노닐으신 이입니다.』
『그대 스승의 용모와 신통은 나 이미 들은 지 오래입니다. 무슨 도를 깨달았기에 그렇게도 거룩하십니까.』
『5음을 제거하고 열두 가지 감관(根境)을 끊어 천상·인간의 향락을 탐내지 않고 청청한 맘으로 법문을 열으십니다.』
『그대의 스승께선 무슨 법을 닦으셨고, 또 얼마나 오랫동안 그 법을 설하셨습니까.』
『나의 나이 아직 어리고 법을 배운 지도 오래지 않거늘, 어찌 그 바르고도 참되고 광대한 여래의 법 이치를 선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의 스승께서 말씀하신 것을 좀 일러 주십시오.』
『일체 법은 인연에서 자라날 뿐 공하여 아무런 주(主)가 없나니, 마음 쉬고 근원을 통달했기에 그러므로 사문이라 말합니다.』
그때에 사리푸트라가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곧 트이어 수다원을 얻었는데, 때마침 마우드갈랴나가 사러푸트라의 그 기쁨에 넘친 얼굴빛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그대와 내가 맹세한바 누구라도 먼저 감로의 법을 얻을 때엔 서로 알려주자고 하였으나, 이제 그대의 그 기뻐하는 얼굴빛을 관찰하건대 감로의 법을 얻은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이에 사리푸트라가 앞서 아비비구에게 들은 게송을 말하자, 마우드갈랴나 역시 곧 마음과 뜻이 트이어 수다원과를 얻었다.
이 때 사리푸트라와 마우드갈라나는 각각 그 도 자취를 얻은 기쁜 마음으로 처소에 돌아온 즉시 그의 제자들에게 위의 사실을 설명하고 타일렀다.
『이제 나는 스스로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출가하기를 결심하였으니,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제자들은 각각 그 스승에게 대답하였다.
『이제 스승님께서 고타마의 법을 배우기 위해 출가하신다면, 저희들도 함께 수종해야 하겠나이다.』
그 때 사리푸트라와 마우드갈라나는 이 말을 듣고 곧 자기들의 제자 각각 2백 50인을 거느리고서 아비 비구의 뒤를 따라 죽림 속으로 들어갔는데, 마침내 80종호를 예배하고 출가하였다.
한편 장조범지가 사리푸트라의 출가 소식을 듣고서 진심을 내어 괴로워하며
「나의 생질이야말로 본래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넓음으로써 16대국의 덕망이 있고 나이 많은 논사라도 다 그에게 복종하였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홀연히 자신의 그 높은 명예를 버리고 고타마를 받들어 섬길까.」
하고는 곧 남천축으로부터 돌아와 부처님께 이르러서 감히 부처님과 논의하기를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장조 범지에게 타이르셨다.
『이제 그대의 소견으로선 아직 참된 열반의 길이 될 수 없노라.』
하자 범지는 스스로 그 능력이 부족함을 알고 즉시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이 이 사실을 보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의 이 범지비구는 전생에 무슨 복을 심었기에 삿된 길을 버리고 바른 법에 돌아왔으며, 또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을 만나서 출가득도하게 되었나이까.』
『한량없는 과거세 때 이 바라나시에 어떤 벽지불이 산림 속에서 좌선을 닦고 있었는데, 때마침 5백 도적이 남의 물건을 겁탈한 나머지 곧 산림 속에까지 들어오기 위해 저 도적의 괴수가 먼저 한 사람을 보내어 산림 속에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보게 함으로써 마침 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있는 벽지불을 보고 곧 다가와서 온 몸을 묶어 괴수 도적 앞으로 이끌어가 함께 죽이려 하므로,
「내가 만약 말없이 저 도적들에게 죽음을 당한다면, 이는 그들의 죄업을 더하여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결과가 되리니, 내 신변을 나타내어 그들로 하여금 신복(信伏)하게 하리라.」
생각하고 곧 18변을 보이니 뭇 도적들이 이것을 보고 매우 놀래고 겁이 나서 제각기 엎드려 참회하였고, 벽지불은 그의 참회를 받아들이었는데, 마침내 그들이 온갖 맛난 음식을 베풀어 벽지불에게 공양한 다음 발원하고서 떠나갔다.
이 공덕으로 말미암아 저 도적의 괴수가 한량없는 세간을 겪는 동안 3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천상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늘의 쾌락을 받아왔으며, 이제 또 나를 만나 출가 득도하게 된 것이다.
비구들아, 알아 두어라. 그 당시의 도적 괴수가 바로 지금의 이 장조 비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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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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