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의 사슴왕

금빛의 사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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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인연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마가승기진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바라나시국 서울에 대명칭(大名稱)이라는 왕이 있었다.
언젠가 왕의 첫째 부인이 아침 일찍 일어나 높은 누각에 올라가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관찰하고 있으니 금빛 사슴왕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공중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부인은 문득 이 금빛 사슴의 가죽이 가지고 싶어졌다.
(저 금빛 가죽으로 요를 만들어 가지면 다른 소원은 없겠다. 그러나 내가 금빛 사슴왕을 보았다고 해도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슴이 하늘을 날아갈 리가 없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하면 저 사슴 가죽을 얻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말을 사람들이 믿어 줄 것인가?)
부인은 목걸이를 끌러 놓고, 옷을 벗고 화장도 안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이 일을 생각하면서 고민의 하루를 보내었다.
그날 저녁 때, 왕은 정청을 나와 자기방으로 돌아왔으나, 자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할 첫째 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왕은 내시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내시는,
『대왕님, 부인께서는 무언가 기분이 언짢으신 모양으로 내실에 틀어박혀 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왕은 곧 부인의 방에 친히 가서 부드럽게 물었다.
『웬일이요. 누가 당신에게 무례한 짓을 했소? 비록 대신일지라도, 왕자일지라도, 다른 부인일지라도, 시녀일지라도 당신에게 무례한 짓을 하였다면 중죄에 처할 것이요. 누구인지 말해보시오. 그렇지 않으면 무슨 가지고 싶은 것이라도 있소?
비록 금이든 은이든 진귀한 보배이든 그리고 향이든 꽃이든 구슬 목걸이든 당신이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당장 구해주지. 자, 어느 것이요? 기분을 돌려 나한테 말해 보시오.』
왕은 여러 가지로 부인에게 물어 보았으나,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를 않는다. 왕도 할수없이 부인의 방을 나와 대신·왕자·다른 부인·시자(侍者) 등 궁중의 모든 사람에게 분부하여 번갈아 부인의 방을 찾아가서 번민의 원인을 물어 보게 하였다.
그러나 그 누가 물어도 부인은 잠자코 시름에 잠겨 있을 뿐이다. 최후로 왕은 궁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시녀를 보내어 부인의 마음을 알아보게 하였다.
이 시녀는 이 궁중에서 자라난 여인으로서 상당히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부인의 방에 가서, 간곡히 부인을 달래었다.
『부인이여, 대왕은 소중한 부인의 남편이 아니십니까? 어째서 그토록 다정하게 물어 보시는 대왕에게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잠자코만 계십니까? 가지고 싶으신 물건이 있으시면, 아무리 구하기 힘드는 물건이라도 반드시 구해다 주실 것입니다.
또 무례한 짓을 한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소중한 이라도 반드시 처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어서 마음 속의 생각하시는 바를 대왕께 여쭈고 명랑한 얼굴로 돌아오십시오. 이렇게 방안에 틀어박혀 울기만 하고 계시면 나중에는 병이 되어 목숨을 줄이는 것뿐입니다. 비록 대왕께서 부인을 사랑하고 계신다하더라도 저승에까지 함께 가시지는 않습니다.
하기야 부인께서 돌아가신 처음에는 슬퍼 울기도 하시겠지마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돌아가신 부인을 잊어버릴 것이며, 얼마 아니하여 또 부인과 같은 아름다운 새 부인이 생겨, 부인에게 하신 것과 꼭 같이 사랑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땅속에서 아무리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을 남김없이 대왕께 털어 놓으십시오. 벙어리가 꿈을 꾸었다 해도 아무도 그것을 알 길이 없습니다. 한 말씀도 않고서 어떻게 마음 속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부인은 이 말을 듣고 참으로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부인은 이 시녀에게 드디어 마음 속을 털어놓았다.
『아무도 나에게 무례한 짓을 한 일은 없어. 나는 약간 생각하는 바가 있어 잠자코 있었던 것이요. 그러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잘 들어 주오. 나는 오늘 아침 일찌감치 누각에 올라가 별을 보고 있었소. 그 때 한 마리의 금빛 사슴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공중을 날아 갔어요. 나는 그것을 본 다음부터는 그 사슴 가죽으로 요를 만들어 그 위에서 자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 가죽을 얻기는커녕, 그런 사슴을 보았다 해도 아무도 믿지않으리라 생각되어 잠자코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다오.』
시녀는 곧 그 이야기를 왕에게 여쭈었다.
왕은 부인의 마음이 겨우 풀렸다고 크게 기뻐하며 옆에 있던 신하에게 물었다.
『그 금빛 사슴의 가죽을 가져올 사람은 없느냐. 나는 그 가죽으로 요를 만들 작정이다.』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그것은 사냥꾼들에게 분부하여 주십시오.』
왕은 곧 대신에 명하여 나라 안의 사냥꾼을 모조리 불러들이게 하였다. 왕은 모인 사냥꾼들에게,
『나는 금빛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요에서 자 보고 싶다. 너희들은 빨리 금빛 사슴을 잡아 오너라.』
하고 명령하였다.
사냥꾼들은,
『대왕님, 잠깐만 말미를 주십시오. 동료들끼리 좀 의논해 보고자 합니다.』
하므로 왕은,
『그러면 의논해 보아라.』
하고, 허락하였다.
사냥꾼들은 집으로 돌아와 곧 모임을 가졌다.
『누구든지 금빛 사슴이 있다는 것을 듣거나 본 사람이 있는가?』
『우리들은 조상 대대로 사냥을 업으로 하고 있지마는 아직껏 금왕 사슴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본 일도 없고.』
하고, 모두들 이야기하였다.
본 일도 들은 일도 없는 것을 잡을 수는 더욱 없다. 별 수 없이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뢰어 용서를 비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왕에게 가서,
『저희들은 선조 대대로 사냥을 업으로 하고 있아오나 금빛 사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습니다. 물론, 본 사람도 없습니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제발 자비를 베푸시어 이 일만은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을 하였다.
그러나 왕은 듣지를 않았다.
『왕의 힘은 자재(自在)로운 것이다. 마음대로 얻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왕은 관원에게 명하여 사냥꾼들을 잡아 모조리 옥에 가두어 버렸다.
이 사냥꾼 가운데 석자라는 용감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뛰어 다니는 짐승도 잡으며 난, 새도 쏘아 떨어뜨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옥중에서 어떻게 하면 죄 없이 잡힌 자기와 동료들이 이 옥에서 밖으로 나갈 수가 있을까 하고 여러모로 생각을 하였다.
(왕께 말씀드려 그 사슴을 찾아 보기로 하자. 만일, 찾아내면 더 이상 없는 일이요. 만일 못찾아 내더라도 이 옥에서 나가 자유의 몸이 될 수는 있다.)
그는 간수를 통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저희들에게 금빛 사슴이 있는지 없는지 찾아보게 해 주십시오.』
왕도 그것은 허락하였다.
이에 석자는 왕을 만나 뵙고 물었다.
『대왕께서는 금빛 사슴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그랬더니 왕은,
『그것은 부인에게 물어 보아라. 부인이 제 눈으로 보았다.』
이에 그는 부인을 만나 뵙고 물어 보았더니, 부인은 본대로를 이야기 하였다.
『내가 이른 아침 누각에 올라가 별을 쳐다보고 있다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날아가는 금빛 사슴왕을 보았어요.』
그는 이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이 사슴왕은 남쪽에 자는 데가 있고 북쪽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 틀림없다. 자는 데서는 잡을 수가 없지마는 먹는 곳에서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는 활과 화살을 가지고 바라나시성을 나가 북으로 북으로 사슴을 찾아갔다. 그는 마침내 히말라야산 기슭까지 왔다. 더 산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어느 골짜기에 샘물이 흐르고 못이 있는데,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있는 한 선경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한 신선이 살고 있었다. 신선은 고행(苦行)과 한거(閑居)에 의하여 욕심을 버리고 도를 닦고 있었다. 그는 활과 살은 풀숲에 감추어 두고 사냥꾼의 옷을 벗고 신선을 찾아갔다. 이 깊은 산에 들어와 오랫동안 사람을 보지 못했던 신선은 그를 보고 매우 반가와 하였다. 신선은 얼른 자리를 마련하고 맛있는 나무열매를 따다가 맛있는 과즙을 만들어 그에게 주었다.
이때 석자와 신선은 세상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는 신선에게,
『이 산에 들어오신지 오래 되십니까?』
『꽤 오래전부터 여기에 살고 있지.』
『이 산에는 무슨 희한한 일은 없을까?』
『있지.』
『무슨 일입니까?』
『이 산 남쪽에 반얀(baayan)나무가 있지, 거기에 언제나 금빛 사슴왕이 한 마리 어디에선가 날아와서는 그 나뭇잎을 먹지. 다 먹고는 또 어딘지 모르게 달아나 버린다. 이런 것은 좀 희한한 이야기이지.』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 몹시 기뻐하였다.
(이야말로 왕의 부인이 보았다는, 금빛 사슴왕이 틀림없다. 이것을 들었으니 이제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는 천연스럽게 또 그 사슴왕이 온다는 반얀나무로 가는 길을 물었다. 신선은 자세히 그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이 신선에게 작별 이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풀숲으로 들어가 벗어 놓았던 사냥꾼의 옷을 다시 입고 활과 살을 가지고, 가리켜 준 길을 따라 반얀 나무를 찾았다. 얼마 아니 가서 저 멀리 한 그루의 훌륭한 반얀 나무를 발견하였다.
그는 기뻐하면서 그 나무 밑으로 갔으나 금빛 사슴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땅 위를 살펴보았으나 그럴듯한 발자국도 없고, 나무를 조사해 보았으나 잎을 먹은 흔적도 없다.
그러나 그는 더 참을성 있게 나무 아래에 숨어서 형편을 엿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한 마리의 사슴왕이 기러기처럼 공중을 날아와서 나무 꼭대기에 앉았다. 사슴이 내는 금빛은 산과 골짜기를 비추어 참으로 장관이었다. 사슴왕은 나무 끝에 머물러 실컷 잎을 따 먹고는 다시 남쪽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던 사냥꾼은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였다.
(이렇게 높은 나무 꼭대기에는 활도 살도 올가미도 그물도 다 소용이 없다. 어떻게 하면 저 사슴을 잡을 수가 있을까, 여기에서 나 혼자 하다가 실수하느니 보다 성으로 일단 돌아가서 대신과 왕의 꾀를 빌리기로 하자.)
그는 급히 바라나시성으로 돌아와 왕에게 금빛 사슴이 살고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것을 알리고,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를 의논하였다. 왕은,
『부인한테 가서 잘 의논해 보아라.』
하는 것이었으므로, 사냥꾼은 다시 부인의 방에 가서 금빛 사슴을 발견했음을 알렸다.
『너는 어디에서 그것을 보았느냐?』
『히말라야산속 반얀나무 꼭대기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슴은 그 잎을 먹으러 매일 남쪽에서 찾아온다고 합니다. 다 먹으면 다시 남쪽으로 돌아갑니다.』
『찰리(刹利)에 백가지 방편 있으면, ―바라문에게 갑절의 수단 있다. 왕에게 천 가지 꾀 있으면,
여자에게 무량의 계책 있으리.』
부 인은 이렇게 부르면서 사냥꾼에게 금빛 사슴을 잡을 꾀를 가르쳐 주었다.
『그 나무의 꼭대기에서 밑둥까지 잎사귀에 한줄로 꿀을 바르고, 꿀이 끝나는 곳에 그물을 쳐 보아라. 사슴은 반드시 꿀 냄새에 유혹되어 결국 그 그물에 걸린다.』
사냥꾼은 부인의 가르침을 받고 다시 히말라야산으로 들어갔다. 가르쳐 준대로 꿀을 바르고 풀속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노라니, 이윽고 사슴은 날아와서 나무 끝에 머물러, 꿀을 바른 잎사귀만을 먹으면서 밑둥까지 내려왔다. 들짐승은 코를 믿으며, 바라문의 수업은 책에 의지하고, 왕은 신하에게 맡기고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는다. 꿀은 끊어지고 사슴은 드디어 그물 속에 잡히고 말았다.
(죽여서 가죽만 벗겨가지고 가는 것보다 살려 가지고 가는 것이 값어치가 더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슴을 매어 가지고 산을 내려왔다. 신선은 사냥꾼이 금빛 사슴을 끌고 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공중을 날아 다니는 재주가 있으면서도 사냥꾼의 손은 벗어날 도리가 없는가, 서글픈 일이로다. 참으로 참혹한 일이로구나.』
신선은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이 사슴을 잡아서 너는 어쩌자는 것이냐?』
『신선님, 내가 이 사슴을 어쩌자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나시 국왕의 첫째 부인이 이 사슴의 가죽으로 무슨일이 있어도 요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냐. 그럼, 이 사슴은 살아 있기에 몸 안에 생기가 있어 금빛을 내고 있지만 죽어 버리면 그 금빛은 사라져 버린다. 살려 데리고 가거라. 그리하면 상은 받을 것이다. 헌데, 너는 어떻게 해서 이 사슴을 잡았느냐?』
사냥꾼은 자세히 그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신선은 부인의 간사한 꾀와 사슴의 탐욕을 슬퍼하면서 말하였다.
『향기로운 맛을 탐내는 것은 고뇌의 근본이니라.
어리석은 사람과 숲속의 짐승은
향긋한 맛에 끌리어 고뇌에 떨어졌도다.』

사냥꾼은 신선에게 이 사슴을 살려서 바라나시국까지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고 물었다. 신선은 산에 있는 동안은 나무열매에 꿀을 발라 먹이고 마을에 내려가서는 볶은 보리 가루를 꿀에 개어 주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는 신선과 작별하고 사슴을 끌고 산을 내려와 마을로 나왔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가죽, 상아 같이 흰 뿔, 푸른 자주빛의 아름다운 눈, 만나는 사람마다
『야, 참으로 아름다운 사슴이로구나.』
놀라는 눈으로 그 사슴을 칭찬하였다.
사냥꾼은 이리하여 바라나시성에 도착하였다. 소문을 듣고 왕은 성안의 길을 깨끗이 쓸고 향수를 뿌리고, 향을 피우고, 종을 치고, 북을 울리어 친히 사슴왕을 맞이하였다. 길 양쪽에 구름처럼 모여든 관중은 이 사슴을 보고 상서로운 조짐이 멀리서 왔다면서 대왕을 위하여 기뻐하였다. 왕의 부인은 이 사슴왕을 보자 크게 기뻐하여 넋을 잃고 사슴에게 달려들어 껴안았다.
부인이 사슴을 끌어안고 어루만지고 있는 동안에 금빛은 사라지고 금빛 사슴은 보통 사슴으로 변하여 버렸다.
『어찌된 일이냐 사슴의 금빛이 사라져 버렸다.』
왕은 놀라서 부인에게 일렀다. 부인도 보통 사슴은 소용이 없다. 야단법석 끝에 겨우 잡아온 사슴은 곧 줄을 끊고 놓여났다.
그 때의 금빛 사슴왕은 지금의 야사비구(耶舍比丘)이다. 왕의 부인이란 지금의 야사비구의 어머니이다. 야사비구는 어머니의 꾀임으로 부처님의 계(戒)를 깨뜨리었다. 거기에는 옛적에 이러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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