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수호운동

언론자유수호운동

[ 言論自由守護運動 ]

시대명 현대

유신체제하의 언론통제에 맞서 일선기자들이 전개한 민주민권운동.

1971년 4월 <동아일보> 기자들을 필두로 한 14개 언론사의 <언론자유수호선언>과 73년 <경향신문>을 비롯한 10개 신문·방송사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 등 71년과 73년에도 언론자유수호투쟁이 전개되었으나 당시에는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반면 74년 이후 실천운동으로 본격화되었다.

74년 1월 8일 개헌운동 및 그 보도를 금지한 1호가 공포되고, 10월 19일에는 <협조요청>이라는 명목 아래 민주단체의 투쟁상황과 베트남 사태의 진상 등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당국의 지시가 내려진 가운데, 10월 23일 <동아일보>의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한 간부 3명이 <서울농대생들 3백여 명 데모> 제하의 기사와 관련하여 정보기관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동아일보> 기자들은 농성에 돌입했다. 한편 같은 날 <한국일보> 발행인 장강재 사장을 비롯, 간부 3명이 베트남 사태에 관한 기사로 의 소환·조사를 받게 되자 <한국일보> 기자들은 농성 끝에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10월 24일 <동아일보> 편집국·방송국·출판국 기자 2백여 명이 <자유언론실천대회>를 개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데 이어 <조선일보>와 <한국일보>가 언론자유수호선언을 하는 등 11월 7일까지 선언에 동참한 언론사는 모두 35개 사에 달했다.

특히 이 투쟁에서 <동아일보>는 각 부별로 선출된 대표들로 자유언론실천 특별위원회를 구성, <알림>이라는 유인물을 통해 실천사항을 점검하고 주지시키는 등 실천활동에 주력했으며, 기독교방송이나 <중앙일보> 등도 유사한 실천기구를 만들었다. 또한 기자협회도 <언론자유수호를 위한 세부실천사항>을 만들어 전국 기자들의 지침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실천투쟁은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등의 노조결성으로 진전되는 한편 <동아일보>에 광고탄압사태를 가져왔으며, 언론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기자해직사태(146명)를 초래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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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신독재체제의 수립
7. 유신체제하의 민주화운동
언론자유수호운동 지금 읽는 중
8. 70년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9. 민족문화운동의 형성
10. 북한의 주체사상 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