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청원 백만인서명운동

개헌청원 백만인서명운동

[ 改憲請願百萬人署名運動 ]

시대명 현대

철폐를 위한 재야인사들의 개헌청원운동. 1973년 12월 24일 함석헌·장준하·계훈제·백기완 등 각계의 민주인사들이 연합, 서울 YMCA에서 <개헌청원운동본부>를 발족시킴으로써 개시, 열흘 만에 30만 명의 서명을 받는 등 놀라운 속도로 번져나갔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 12월 29일 대통령담화를 발표, 개헌서명운동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에 아랑곳없이 74년 1월 7일에는 이희승·백낙청·이호철·박태순 등 61명의 문인이 지지성명을 내고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등 개헌운동은 날로 확산되어 갔다. 그러자 정부는 1월 8일을 기해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및 헌법의 개폐를 주장·발의·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는 1호를 선포하고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했다. 이로써 최초의 긴급조치 위반사건으로 장준하와 백기완이 구속되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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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신독재체제의 수립
7. 유신체제하의 민주화운동
8. 70년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9. 민족문화운동의 형성
10. 북한의 주체사상 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