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전사건

남민전사건

[ 南民戰事件 ]

시대명 현대
연도 1979년

1979년 10월 9일·16일, 11월 3일 3차례에 걸쳐 당국이 발표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의 약칭.

당국은 수사진행 상황을 발표, 78명으로 구성된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지하 점조직인 남민전은 「표면상으로는 반체제를 가장하면서 베트콩 방식을 도입, 데모와 테러·선동·게릴라 활동으로 사회를 혼란시켜 국가변란을 기도한 적색집단」이라고 규정했으나, 사건관련자 전원은 「유신정권을 타도하려는 반독재민주화운동」일 뿐이라고 주장했으며, 태윤기·유현석·황인철·홍성우·조준희 등의 변호사도 남민전이 강령이나 규약상 반국가단체가 아님을 주장,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측의 일대 논전이 벌어졌다.

남민전 산하의 <한국민주투쟁국민위원회>와 <한국민주학생구국연맹>에는 60년대 및 70년대의 학생운동가들이 대거 참여, 극심한 탄압상황하에서 학생운동이 지하운동화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재문은 옥사, 신향식은 사형집행, 전수진은 병보석 후 병사했으나, 나머지는 1·2심에서 39명이 석방된 것을 비롯, 만기·특사 등으로 88년 이전에 모두 석방되었다.

동의어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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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신독재체제의 수립
7. 유신체제하의 민주화운동
남민전사건 지금 읽는 중
8. 70년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9. 민족문화운동의 형성
10. 북한의 주체사상 확립
1. 광주민주화운동과 신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