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세의 역사

산호세의 역사

가. 식민 시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502년 제4차 항해 때 코스타리카 카리브 해 연안의 리몬(Limón)에 상륙했다. 에스파냐의 코스타리카 식민 지배는 1509년에 시작되었고, 1542년 과테말라 총독령(Capitanía General de Guatemala)에 병합되었다. 1738년 비옥한 중앙 고원에 자리한 현재의 산호세 지역에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는 과밀한 중앙 고원 지역의 인구를 분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이름은 신도시를 의미하는 빌라누에바(Villa Nueva)였다.

산호세는 중앙 고원의 기존 중심지였던 카르타고(Cartago)나 에스파르사(Esparza)와 달리, 정부에 의해 계획적으로 설계된 도시가 아니었다. 1812년에 시 의회가 설치되었고, 1813년에 에스파냐 의회로부터 도시의 명칭을 부여받았다. 산호세의 발전이 더뎠던 가장 큰 이유는 용수 공급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산호세는 배수로의 확장과 비옥한 농경지, 코스타리카 담배공사(Tobacco Factory of Costa Rica)의 설립 등에 힘입어 18세기 말부터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점차 에스파냐 식민지의 담배 생산과 거래 중심지로 발전했다.

1821년 코스타리카가 포함된 과테말라 총독령이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했고, 곧이어 멕시코에 합병되었다. 당시 코스타리카는 독립 후 국가의 미래에 대한 이견 때문에 2개의 진영으로 나누어졌다. 보수적인 색채의 카르타고와 에레디아 사람들은 계속 멕시코와의 통합을 주장한 반면, 산호세와 알라후엘라(Alajuela) 사람들은 중앙아메리카 연방의 가입을 주장했다. 마침내 산호세의 승리로 1823년 중앙아메리카 5개국(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은 독립을 선언하고, 중앙아메리카 연방(República Federal de Centroamérica)을 구성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된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 내의 갈등으로 1838년 연방이 해체되고, 코스타리카 독립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나. 독립 이후

1838년 코스타리카 입헌 의회는 마침내 코스타리카(La Republica de Costa Rica)의 독립을 선언했다. 당시 코스타리카의 수도로 기능하던 카르타고에서 산호세로 수도 기능의 이전이 추진되었고,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산호세는 코스타리카의 명실상부한 수도가 되었다.

산호세는 1840년대에 코스타리카 커피 생산의 중요한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20세기 이후 코스타리카의 정치·경제·사회 중심지로서 빠르게 발전해 왔다. 오늘날 중앙아메리카 도시 중 드물게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연관목차

775/1205
17. 과테말라
18. 파나마
19. 코스타리카
20. 벨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