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사회

아바나의 사회

가. 인구

아바나에는 2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는 쿠바 인구의 5분의 1 정도이다. 아바나 주민의 평균 기대 수명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 중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아바나의 인구는 20세기 전반에 빠르게 증가하였는데, 1931년에 약 73만 명이던 인구가 1953년에 122만 명으로 증가하였고, 1960년에는 약 153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 이후 196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는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 비해 증가율이 낮게 나타났다. 1975년에 약 192만 명에 이르고, 1990년에 210만 명까지 늘어난 이후 약간의 증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 정부가 아바나의 인구 수용 능력을 감안하여 도시 인구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인종

1980년대 아바나의 주민은 백인이 약 60%, 혼혈인이 약 20%, 흑인이 약 16%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비해 혼혈의 비중은 적고 흑인의 비중이 높은데, 이는 에스파냐 식민 지배 초기에 원주민이 대부분이 사망하자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아프리카 서부 해안 지역의 흑인들을 노예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아바나에서 가장 두드러진 소수 인종은 중국인이다. 19세기 중반 노예 제도가 폐지되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동력을 들여올 수 없게 되자, 당시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통해 중국인 노동자(쿨리: Coolie)들을 이주시켰다. 계약 노동자였던 중국인들은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아바나에 정착하였으며, 쿠바 혁명 이전까지 20만 명 정도의 중국인들이 아바나에 거주하였다. 현재 아바나에 거주하는 중국계 쿠바 인의 규모는 10만 명 정도이다. 중국계 이민 사회와 사회주의 체제라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아바나에는 중국의 자본과 기술의 유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국계 이민 사회 또한 아바나 경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 주거

아바나는 라틴 아메리카의 대도시의 외곽에서 대부분 볼 수 있는 불량 주택 지구가 거의 없다. 라틴 아메리카 및 개발도상국의 불량 주택 지구는 농촌 거주민들이 도시로 이촌향도하면서 조성되지만, 아바나의 경우에 사회주의 혁명 이후 아바나의 인구 수용 능력을 고려하여 농촌 인구의 이주를 제한하였다. 또한 아바나 정부는 도시민의 주거를 위하여 러시아 및 동유럽과 유사한 방식으로, 균일한 패턴의 아파트를 건설하여 공급하였다. 아파트 단지는 1개 또는 2개의 방이 있는 동일한 구조의 아파트로 구성되며, 각 아파트에는 기본적인 주거 설비가 갖추어져 있다.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 중 아바나 역사 지구는 1982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건축물의 보수 및 재건축이 용이하지 않아 역사 지구의 주거 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말레콘(Malecón) 지역을 비롯한 아바나 역사 지구의 건물에 대한 보수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라. 다마스 데 블랑코

아바나에서는 다마스 데 블랑코(Damas de Blanco: 하얀 여성)라는 단체가 매주 일요일 흰옷을 입고 글라디올러스를 든 채 교회에서부터 자신의 집까지 행진하며 쿠바 정부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한다. 다마스 데 블랑코는 구금된 쿠바 반체제 인사들의 여성 가족으로 구성되었으며, 아바나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정치적 탄압을 받는 이들의 어머니가 형성한 단체가 여럿 결성되어 있다. 특히 정치적 억압이 심하였던 칠레의 ‘구금 및 실종자들의 가족 연합’과 아르헨티나의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이 유명하다. 이 두 단체는 1970년대 독재 정권에 의해 살해되거나 실종된 자녀를 둔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 밖에도 엘살바도르의 ‘코마드레스(CoMadres)’, 니카라과의 ‘영웅과 순교자의 어머니회’, 과테말라의 ‘상호 지원 단체’ 등 다수가 있다. 다마스 데 블랑코는 이러한 라틴 아메리카의 어머니 모임 형식을 빌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여성이 지닌 희생하는 존재로서의 이미지를 활용하였다. 독재로 고통받는 자녀들을 위해 일어선 어머니들의 행진의 기원은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57~1958년 쿠바의 항쟁 당시 카스트로가 주축이 된 반란 세력은 바티스타 독재 정권의 폭압을 폭로하기 위해 산티아고 시에서 어머니들의 행진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다마스 데 블랑코는 2005년 유럽 의회가 수여하는 사하로프상(Sakharov Prize)을 수상하였고, 2007년에는 에스파냐 총리가 직접 그들에 대한 지지를 편지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다마스 데 블랑코는 국제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으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쿠바 국내에서는 통제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쿠바 정부는 이들에 대한 강경한 대응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키울 것이라고 판단하여 강경한 진압은 피해 왔다. 그러나 2012년 3월에 쿠바 정부는 처음으로 다마스 데 블랑코 회원 수십 명을 체포하였다. 당시 3월 말로 예정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방문을 앞두고 이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한 데 대해 정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이들이 전격적으로 체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아직 석방되지 않은 회원들과 그 가족들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인 맥락을 떠나서, 다마스 데 블랑코는 사랑하는 이가 감옥에 갇힌 슬픔을 지닌 여성들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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