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로사데코판의 역사

산타로사데코판의 역사

가. 식민 시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온두라스를 발견하기 이전에도 이곳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코판(Copán) 유적 등으로 미루어 9세기 말경까지 마야 족(Maya)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파야 족(Payas), 모스키토 족(Mosquitos), 렝카 족(Lencas), 수모 족(Sumos), 초로테가 족(Chorotegas) 등 여러 원주민들이 거주하였다. 1502년 콜럼버스의 제4차 항해 때 온두라스가 발견된 이후, 에스파냐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자 원주민들은 크게 저항하였다. 렘피라(Lempira)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3만 명의 원주민들이 에스파냐에 대항하여 싸웠는데, 렘피라가 살해된 이후 원주민들은 광산이나 농장 등지에서 혹사를 당하였다.

산타로사데코판에서 에스파냐의 정착지는 1705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에스파냐 인인 돈 후안 가르시아(Don Juan García de la Candelaria) 선장이 라틴 아메리카의 대농원인 아시엔다(hacienda)를 건설하기 위해 '로스야노스(Los Llanos)'라 불린 땅을 구입한 것이다. 이후 가르시아의 후손들이 4개의 목장을 건설하였고, 담배를 중심으로 농장이 번성하면서 거주자들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1812년부터는 수호성인의 이름을 덧붙여 ‘로스야노스데산타로사(Los Llanos de Santa Rosa)’로 불렸다.

나. 독립 이후

1539년부터 과테말라 총독령(Capitanía General de Guatemala)의 지배를 받던 온두라스는 1821년에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하였다. 잠시 멕시코에 편입되었으나 1824년에는 중앙아메리카연방(República Federal de Centroamérica)에 가맹하였다. 1838년에 온두라스 공화국(República de Honduras)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산타로사데코판은 1843년에 도시 지위를 획득하였으며, 온두라스 서부의 중심 도시로서 여러 차례 전쟁과 갈등을 겪었다. 특히 1852년 호세 트리니다드 카바냐스(José Trinidad Cabañas)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이 지역의 담배 산업을 과테말라(Guatemala)와 엘살바도르(El Salvador)로부터 지키기 위해 수도 이전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이후 20세기 들어 여러 차례 발생한 내전에서도 피해를 입었다. 1869년에 코판(Copán) 주가 새로 건설되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산타로사데코판은 코판 주의 주도일 뿐 아니라, 온두라스 북서부 지방의 최대 도시로 그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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