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

화랑도

[ 花郞道 ]

시대명 고대/삼국

의 청소년으로 조직된 수양단체로서 교육의 기능까지 담당했다. 국선도·풍월도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 37년(576년) 봄에 원화를 받들게 했다. 이보다 먼저 군신들이 인재를 알지 못하여 근심한 끝에 많은 사람들을 무리지어 놀게 하고 그들의 행실을 살펴 가려 뽑으려고 했다.

이에 아름다운 두 여자를 뽑았는데 하나는 남모, 다른 하나는 준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였다. 그들은 각각 300여 명의 무리를 모아 거느렸다. 두 여자는 차차 아름다움을 서로 다투어 시기하여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하여 술을 먹인 다음 강물에 던져 죽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각되어 준정은 사형을 당하고 그 밑에 모여들었던 무리들도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후에 다시 미모의 남자들을 뽑아서 곱게 단장하게 하고 화랑이라 이름하여 받들게 하니 화랑을 따르는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라고 하고 있다.

대체로 왕족이나 고위 귀족의 자제 중에서 선발하여 화랑이라고 하고 그 밑에 모인 무리들을 낭도라고 했다. 화랑도는 전국의 산천과 명승고적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심신을 연마하는 일종의 전사단체로서 교육의 기능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화랑도의 무리 중에서 출중한 자를 뽑아 장군이나 관리로 임명했는데, 의 <화랑세기>에 의하면 현좌 충신과 양장 용졸이 화랑도를 통하여 배출되었다고 하고 있다. 특히 진흥왕 이후 신라의 세력팽창에 화랑도의 무리들이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등의 활동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