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고분

백제 고분

[ 百濟古墳 ]

시대명 고대/삼국

는 계통의 사람들이 한강 유역에 정착하여 세운 나라이다. 때문에 초기의 유물이나 고분들은 고구려의 것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475년 고구려의 압력으로 공주에 천도한 이후에는 중국 남조 계통의 무덤양식의 영향을 받는다. 백제의 무덤양식은 백제의 정치변동과 관련되면서 변화하고 있다.

1. 한성시대

3세기 초~475년. 성동구 광나루·가락동·석촌동 등지에 산재하고 있는 적석총과 일반 봉토분 형식이다. 적석총은 방형 3단의 계단식으로 내부는 진흙으로 다지고, 밖은 돌로 쌓았다. 이러한 형식은 고구려의 초기 무덤형식과 아주 흡사하다. 봉토분은 와 석실묘로 나누어진다. 토광묘는 땅 위에 구덩이를 파고 목관을 매장하는 형식으로 가락동 2호분이 이 형식에 해당한다. 석실묘는 방형 석실의 남벽 중앙에 입구와 무덤길(연도)이 있는 고구려 식 석실형식으로 천장을 나무로 덮은 것도 있는데 서울 중곡동 무덤이 여기에 해당한다.

2. 웅진시대

475~538년. 공주를 중심으로 한 구릉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적석총이 없어지고 고구려 계통의 방형 석실묘, 장방형 석실묘가 등장하며 중국의 영향을 받은 전축분이 새로이 등장한다. 송산리 6호분은 이 지역의 유일한 벽화고분으로 벽화를 그릴 부분에 진흙을 바르고 4신을 그렸다. 1971년에 발견된 은 묘지(墓誌)를 비롯한 각종 부장품이 발견되어 미술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했다.

3. 사비시대

538~660년. 부여지방의 이 대표적인데, 구릉 경사면에 남북으로 긴 장방형 석곽을 쌓고 남벽 중앙으로 무덤길을 낸 석실분의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