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품

육두품

[ 六頭品 ]

시대명 고대/삼국

골품제의 성골·진골 다음 등급으로, 6두품 되기가 어렵다고 하여 득난(得難)이라고도 했다. 제6관등인 아찬까지 오를 수 있었으며, 6두품으로 아찬보다 높은 관직에 올릴 때는 5관등인 대아찬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중위제(重位制)를 적용하여 중아찬에서 4중아찬까지를 주었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진골귀족이 6두품으로 강등되는 경우도 있었다.

6두품 출신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 그리고 신라 말기의 등이 있으며, 특히 종교분야에서 탁월한 인물이 많았다. 이들은 왕권과 밀착하여 그들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특히 유교적인 정치이념을 강조하면서 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는데, 신라 말 최치원의 「시무 10조」는 6두품 출신으로 신라사회의 골품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신라 말 이후 새로운 사회세력의 하나로 고려 건국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