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대당항쟁

고구려 대당항쟁

[ 高句麗對唐抗爭 ]

시대명 고대/삼국

618년 수를 멸하고 건국한 당은 수나라의 뒤를 이어 를 정복하고자 했다. 건국 초기에는 고구려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지 않아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국가체제를 정비하면서 본격적인 고구려 원정준비를 했다. 이에 대해 고구려는 장성을 쌓고 주변민족과 연합하는 등 당의 침략에 대비했다. 특히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은 최고실권자인 의 지위에 올라 당나라에 대해 강경한 대항의지를 보였다.

645년 당의 태종은 직접 2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공격했다. 당군은 요동성에 이르러 한 달여의 싸움 끝에 간신히 요동성을 함락시키고 안시성으로 밀려들었다. 안시성에서는 장군을 중심으로 당나라의 치열한 공격을 막아냈다. 2달 동안의 끈질긴 공격으로도 안시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던 당은 고구려 정벌을 포기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안시성을 함락시키는 데 실패한 당나라는 그 뒤로도 침략의 뜻을 굽히지 않고 고구려를 소규모의 병력으로 공격하여 기운을 빼는 작전으로 나갔다. 당나라는 태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한 후 다시 전쟁준비를 완료하고 정명진·소정방·설인귀 등을 우두머리로 하여 몇 차례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그때마다 고구려는 침략군을 단호하게 격퇴했다. 그 후 당나라는 와 연합하여 를 멸망시킨 다음 고구려로 다시 공격의 창끝을 돌렸다. 그런데 고구려에서는 666년 연개소문이 죽은 다음 그의 세 아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허점을 보였고, 당과 신라의 연합군은 고구려의 내분을 틈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다. 결국 668년 9월에 이 함락되고 고구려는 멸망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