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연개소문

[ 淵蓋蘇文 ]

시대 삼국
출생 - 사망 미상 ~ 665년 추정
직업 장군, 정치가

의 장군·정치가. 그의 조부 자유가 를 역임했고, 아버지도 동부대인의 직위에 있었던 고구려의 명문가 출신이다. 그의 성씨에 대해 중국 측 기록은 천(泉)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당의 고조 이연(李淵)의 이름과 같아 이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고구려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시기는 중국이 수나라에 의해 통합되고 고구려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던 시기이다. 그는 국경의 수비를 맡으면서 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기도 했다. 그의 세력이 커지자 이를 두려워한 고구려의 대신들과 영류왕은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으나 이를 눈치챈 연개소문이 먼저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포함한 대신 100여 명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했다(642년).

그는 7세기 고구려의 대외정책을 강경하게 이끌어갔다. 의 공격으로부터 구원을 요청하러 왔던 의 김춘추를 감금했으며, 신라의 중국 교통로인 당항성을 공격했다. 당나라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대응하여 당 태종이 20여 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나라의 공격은 안시성의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군에 의해 격퇴되었다. 643년에는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했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도교를 받아들여 장려했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그의 세 아들 ·남산·남건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고구려 멸망의 길을 재촉하기도 했다.